공정성이 몇 년째 논란이다. 전통적 공정성이 강자에 의한 약자의 배제를 주로 다뤘다면, 최근의 공정성 논란은 강‧약, 주류‧소수 관계없이 “나와 주변의 경쟁”에 초점을 맞추는 듯 보인다. 이번 칼럼은 2020년대의 여덟 가지 키워드 중 여섯 번째인 ‘공정’을 다룬다. 최근 유행하는 공정성 담론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오는 반-능력주의 담론의 결함을 살펴본다. 공정성은 개인이 받는 보상의 차이가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봉건 사회에서는 신분이나 신의 은총이 기준이었다. 하지만 신분과 신을 타파한 근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그 기준이 된다. 개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기여하고, 기여만큼(다른 말로 하면 실적만큼) 보상받는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세계관이라 할 실적주의(meritocra..
20세기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군부독재를 끝내는 문민화였다. 그렇다면 21세기의 과제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수준을 높이는 선진화라 할 것이다. 한국 정치에는 문민화 이전의 악습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2016년 터진 박근혜 게이트는 이를 단적으로 폭로한 사건이었다. 경쟁을 제한하고, 특권을 이용하는 지대 추구의 정치는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과연 박근혜 탄핵 덕에 집권한 현 정부는 이를 얼마나 어떻게 개혁했을까? 이번 칼럼의 주제는 2020년대의 여덟 가지 키워드 중 다섯 번째인 민주이다. 민주정은 통치권이 대중에게 있는 정치 체제를 말한다. 통치권이 세습되는 군주에게 있으면 군주정, 신분적 특권을 가진 소수 집단에 있으면 귀족정이라 부른다. 민주정은 국민의 평등한 자유를 보장하는 데 효과적..
법치주의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말이면서 동시에 실제 의미를 두고 항상 논쟁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검찰개혁을 두고 이 논쟁이 치열했다. 이번 칼럼은 2020년대의 여덟 가지 테마 중 네 번째로 법치주의를 다룬다. 민주당발 검찰개혁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건 그 개혁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이 아니라 집권 세력에게만 유리한 법을 만들려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한 여당 정치인들의 ‘내로남불’(법적, 규범적 이중잣대)은 이런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집권 세력의 영향권에 있는 경찰과 공수처가 별다른 견제 장치도 없이 검찰의 권한을 가져간 것도 마찬가지였다. 법학에서는 집권 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법..
“노동하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직장에 구속되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니 말이다. 성공한 인생이란 임대료를 받는 삶이다. 맘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으니. 적어도 50대 이후에는 직장에서 나와 건물주로 살 수 있어야 성공한 인생이다.” 필자가 한 자산 투자 강의 영상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이제 이런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시대다. 심지어 서점의 매대를 가득 채운 투자 관련 책들도 다 이런 식이다. 불로소득에 대한 도덕적 불편함이나 신성한 노동 따위는 이제 먼 옛날의 한때 이야기인 것 같다. 요즘 보면 기업의 가치평가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미국의 시가총액 순위를 보면 디지털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추가되는 노동이 아니라 지식재산..
인류 역사에서 경제가 끊임없이 성장한 건 지극히 최근의 현상이었다. 매디슨 프로젝트 추정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1인당 GDP로 측정한다)의 95%는 최근 200년 사이 이룬 것이다. 4대 문명이 세워진 것이 대략 5천 년 전이니, 인류는 4천8백 년 동안 현재 풍요의 단 5%만 이뤄냈던 셈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성장의 위대함이다. 그런데 최근 이 성장에 문제가 생겼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전반이 장기 저성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 경제 침체로 저성장 위기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2020년대의 여덟 가지 키워드 중 두 번째, 풍요 또는 장기적 경제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로버트 고든은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에서 20세기 성..
2020년대는 여러모로 20세기 세계의 끝자락인 것 같다. 먼저 20세기의 고도성장 경제가 끝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정부 부채 증가는 단적인 지표다. 다음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성 대신 정념을 앞세우는 포퓰리즘 정치가 자유민주주의로 대표되는 20세기 정치 질서를 뿌리부터 흔든다. 그런데 모두가 느끼고 있듯 20세기적 세계가 끝나가는 것은 분명한데,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질 않는다. 이 진공 상태 속에서 사회가 혼란하다. 나는 이번 칼럼부터 20세기적 세계와 관련된 8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이 진공 상태를 분석해보려 한다. 도대체 무엇이 사라지는 것이며, 또 무엇이 오지 않고 있는 것인가. 8가지 키워드는 자유, 풍요, 노동, 법치, 민주..
자그마치 경남도지사, 그것도 집권 세력 코어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을 불법으로 조작했다. 집권86세대 정치인의 이런 행태는 일탈이 아니라 일관된 것이다. 여론이란 조작의 대상이며, 그 여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민주주의관이기 때문이다. J.S밀은 일찍이 대중 민주주의가 여론 조작을 통해 문민 독재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문민 독재를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다원주의와 최대한의 언론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 집권세력은 역사왜곡처벌법이나 언론규제법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는 현 정부를 문민독재로 규정하는 게 조금도 과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여론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사람이다. 다만 둘 모두 여야의 비주류라 내년 3월 대선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둘의 출마선언문은 차분히 비교해볼 만하다. 시민들이 다음 대통령을 선택할 때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쟁점이 있어서다. 대척점에 있는 둘의 ‘정부론’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진보진영이 대선과 관련한 논의를 할 때도 이 쟁점을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사는 선언문에서 “용기와 결단”, “강력한 추진력”을 강조했다. 제왕적이라고 평가받는 대통령 권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없다. 대통령 권력을 목표 달성을 위해 충분하게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의 정책 역시 “강력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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