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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직장에 구속되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니 말이다. 성공한 인생이란 임대료를 받는 삶이다. 맘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으니. 적어도 50대 이후에는 직장에서 나와 건물주로 살 수 있어야 성공한 인생이다.”

필자가 한 자산 투자 강의 영상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이제 이런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시대다. 심지어 서점의 매대를 가득 채운 투자 관련 책들도 다 이런 식이다. 불로소득에 대한 도덕적 불편함이나 신성한 노동 따위는 이제 먼 옛날의 한때 이야기인 것 같다.

요즘 보면 기업의 가치평가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미국의 시가총액 순위를 보면 디지털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추가되는 노동이 아니라 지식재산권이나 정보의 집적이 이윤의 토대다. 한국에서도 플랫폼으로 불리는 기업들이 최근 주목을 받는데, 이들은 거래 알선, 정보 유통, 금융 거래 등에서 이윤을 거둔다. 노동과 이윤의 관계가 간접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에서 더 멀리 벗어나야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의 종말같은 극단적 전망도 속류 학자들에 의해 과감하게 제출된다. 요즘 유행하는 기본소득론은 종말까지는 아니어도 노동이 더는 생산과 소득의 중요한 원천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정말 이 세계는 점점 더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걸까? 지난 칼럼에 이어 2020년대의 여덟 가지 키워드 중 세 번째, 노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노동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근대적 의미의 노동은 자유주의의 대부 존 로크에 의해 정의되었다. 개인이 자유롭다는 것은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이고, 재산은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정신과 육체로부터 형성된다. 토지나 건물 같은 자산은 자신의 신체(정신과 육체)를 사용해 얻은 이차적 소유물이다. 재산과 관련하여 개인이 신체를 사용하는 걸 노동이라 부른다면, 이 노동을 온전하게 자신이 소유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 노동은 곧 자유다.

물론 현실의 노동은 로크의 정의와는 사뭇 다르다. 근대의 시작과 함께 경제의 지배적 제도로 자리 잡은 임금노동제에서는 노동으로 자유를 얻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임노동제에서는 기계나 토지를 소유한 사람(자본가)이 다른 사람의 노동 능력을 구매한다. 임금 소득을 위해 노동 능력을 판매한 사람은 계약기간(근로시간)에 자유를 포기하며 사용자의 명령에 따른다. 노동 능력의 사용자인 자본가는 허용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동을 최대치로 뽑아내야 한다. 노동은 자유가 아니다. 구속이다.

개념인 자유로서 노동과 현실인 임노동제의 노동사이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친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 분석에 따르면 노동과 관련해 자본주의의 특징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상품 생산을 위해 노동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풍요를 상품 생산을 통해 달성하는데, 상품은 화폐 가격을 가지며 시장에서 판매를 위해 생산된다. 상품의 가격은 개별적으로는 수요공급의 변동이나 독점 같은 불완전한 경쟁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상품 전체의 가격은 원리적으로 노동 전체를 표현한다. 경제학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생산의 3대 요소인 자본(기계), 토지(천연자원), 노동에서 자본은 생산물 중 일부를 생산과정에 재투입한 것이고, 토지는 인간 사회가 아니라 지구가 만들어 놓은 것을 단지 누군가 소유하고 있을 뿐이니, 생산에 필요한 인간 사회의 순투입물은 노동뿐이란 것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가 소비하는 상품의 수량적 가치는 투입된 노동을 수량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상품의 가치는 화폐로 표현되며, 수량화된 노동은 그 화폐의 양과 같다. 요컨대 노동은 1, 1달러로 표현되고, 1년간의 순생산이 1천조 원이라면 그만큼의 노동이 지출된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생산된 상품을 노동한 사람(노동자)이 아니라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갖는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임금을 받을 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소유의 독특한 법칙이다. 생산물의 최종 책임자인 자본가는 노동과정을 통제하고, 노동자는 자본가에 고용되어 명령을 받는다. 노동자는 자본가와 관계하는 것이지 결코 생산물과 직접 관계하지 못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가는 임금을 주고 남은 가치를 취득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윤이다. 상품의 가치가 노동을 표현하니, 이윤은 임금을 지급하고도 남은 노동을 표현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윤을 잉여가치 또는 노동 착취라고 불렀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노동 없는 상품 경제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만약 노동이 사라진다면 상품 가격도 사라진다. 가격이 사라지면 이윤도 없다. 이윤이 없으면 자본가가 생산을 계속할 유인이 사라진다. 사실 공황이나 경제침체는 노동의 감소를 의미한다. 여러 이유로 자본이 추출하는 노동이 감소할 때 GDP로 측정되는 국민경제의 성장률도 하락한다. 디지털이나 플랫폼 기업들의 이윤은 실제로는 다른 기업의 이윤을 수탈한 것이거나 또는 더 많은 노동 착취로 일궈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의 성장은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과 동반하지 않는다. 탈노동 사회의 기본소득론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노동하는 주체가 생산물의 소유자 또는 책임자일 수 없으니, 노동은 소유하는 인간의 권리가 될 수 없다. 소득을 위한 고통 또는 생산에서 소외된 임금 노예의 일로 격하된다. 노동 존중이니, 신성한 노동이니 하는 말들은 사실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들의 감언이설이다. 따져보면 자본주의에서 노동하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란 규정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가 철저히 숨긴 것을 노골적으로 폭로하기 때문에 문제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유로서 노동이 존재해야 자유와 풍요가 함께 증진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자유와 풍요의 연결고리가 노동권이라는 것이다. 그는 노동권이 완벽하게 확보된 사회를 공산주의라고 불렀다. 노동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는 현재,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다시 한번 출몰할 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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