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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는 여러모로 20세기 세계의 끝자락인 것 같다. 먼저 20세기의 고도성장 경제가 끝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정부 부채 증가는 단적인 지표다. 다음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성 대신 정념을 앞세우는 포퓰리즘 정치가 자유민주주의로 대표되는 20세기 정치 질서를 뿌리부터 흔든다. 그런데 모두가 느끼고 있듯 20세기적 세계가 끝나가는 것은 분명한데,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질 않는다. 이 진공 상태 속에서 사회가 혼란하다.

나는 이번 칼럼부터 20세기적 세계와 관련된 8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이 진공 상태를 분석해보려 한다. 도대체 무엇이 사라지는 것이며, 또 무엇이 오지 않고 있는 것인가. 8가지 키워드는 자유, 풍요, 노동, 법치, 민주, 공정, 기업, 정부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첫 번째로 자유를 이야기해보겠다.

자유는 현대의 근본적 지향이다. 자유는 타인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신체(육체와 정신)와 소유물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자유를 여러 사람이 더 많이 누리도록 만드는 게 현대의 '진보'다. 그런데 최근 이 자유의 진보에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 물리적 폭력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자유의 가장 기본적 조건은 물리적 폭력 또는 그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다. 폭력의 목적이 자유를 뺏는 것이니 너무나 당연하다.

최근 신흥국에서는 국가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중국의 홍콩 탄압은 단적인 사례이다.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권위주의 정부들의 폭력 행위도 늘었다. 가까스로 민주화에 성공한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권위주의 정부가 재등장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시민 사이의 폭력이 늘고 있다. 인종주의적 린치, 혐오 범죄, 정치 진영 간의 물리적 충돌 등등. 2020년대의 선진국에서는 이전보다 오히려 '폭력'의 총량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이다. 자유의 확대에는 당대 사회의 기본적 풍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존엄'의 평등성이 필요하다, 경제적 격차가 커지면 상대적 박탈감,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개인들이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심지어 2등 시민 같은 부당한 대우나 특정 집단에 대한 공격도 늘어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좁은 회랑>의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사회 역량' 확대를 주장한다. 정부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자원을 동원할 힘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이런 힘을 얼마나 유능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안전의 수준이 결정된다. 하지만 정부의 힘이 지나치면 독재로 나아간다. 독재는 결국 시민적 자유를 억압한다. 경제적 성장에도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물론 독재의 반대인 무정부적 상태가 해법은 아니다. 무능한 정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폭력을 방치한다. 그래서 애쓰모글루는 독재적 정부와 무능한 정부를 동시에 지양하려면 조직되고 결집된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역량을 증진하는 것도, 그 정부가 독재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우는 것도,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집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지에 따르면 최근 폭력이 증가하는 원인은 노동조합, 시민단체, 풀뿌리 대중정당 등의 시민 조직들이 약화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세계화, 자동화, 금융의 성장, 거대 기업의 시장 지배 같은 21세기 경제 추세는 시민의 결집력을 약화시켰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권력의 확대와 경제적 불평등 증가, 시민사회의 위축이 사태를 더 악화했다. 애쓰모글루에 따르면 해결의 방향은 명확하다. 어떻게든 노동조합, 다양한 시민단체, 대중적 정당 등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 위에서 유능한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적 분석에 따르면 자유의 위축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다. 자본주의를 경제 질서로 삼는 현대 사회에서는 자유가 항상 불안정하다. 시민 다수가 임금소득을 위해 자유의 일부를 자본의 소유자(기업)에게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시민은 경영자의 명령에 따른다. 즉 자본에 구속됨으로써 나머지 생활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유의 원리다.

그런데 이 정도의 자유조차 자본의 목적인 이윤이 충분하지 않으면 줄어들고 만다. 자본이 투자를 늘리지 않거나 비용 절감에 나서면 일자리가 사라지니 말이다. 자유를 포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시민은 생존의 위협 속에서 나머지 자유도 누리지 못한다. 즉 경제성장이란 조건에서만 부분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에서의 자유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성장은 편향적 기술 진보의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제처럼 말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적 분석에 따르면, 애쓰모글루의 해법은 두 가지 점에서 한계가 있다. 첫째, 경제성장의 지속성을 전제해서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경제성장이 멈춘 상태에서는, 고용되지 못해 조건부 자유조차 누릴 수 없는 시민이 증가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최근의 선진국이 보여주듯 사회 역량이 강화되기 어렵다. 둘째,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에서의 자유가 가지는 치명적 결함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려면 자본가에 노동자가 고용되는 체제, 즉 자유를 포기해야만 그나마 부분적 자유라도 얻을 수 있는 이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자본주의를 변혁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 변혁은 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계급의 대표를 자임하는 정당이 정부 권력을 잡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개인적 소유의 재건이 진정한 자유의 조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사회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노동이라고 한다면, 노동이 자아실현과 사회적 분업을 동시에 달성하도록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현실 사회주의는 이런 지향에 한참 미달했다. 여러 점에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쨌든 코로나19 이후 위축되고 있는 자유를 다시 확대하려면, 애쓰모글루가 주장한 것처럼 사회의 결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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