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기후, 에너지 법안은 탄소세나 탄소거래제를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탄소 배출로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저탄소 전기 생산과 사용에 인센티브를 얻는 구조다. 아마 한국에서 저 법안이 통과됐다면 당장 '기업 퍼주기' 법이라며 비난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법안이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민생고가 큰 상태에서, 더군다나 공화당만이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화석연료 사용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의원들이 꽤 있는 상태에서, 현실적 최선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둘째, 재생 에너지 또는 저탄소 에너지가 화석연료 에너지와 여전히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탄소세가 경제학적으로 작동하려면 탄소 가격 부과로 대안 에너지가 경쟁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발전량도 ..

한 달 후 있을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의 승리가 확정적이라고 한다. 선거연합은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형제당(Fdl)과 지지율 3위의 동맹(Lega)이 중심이다. 형제당은 네오-파시스트 운동이 사용하던 상징을 당 로고에 새겨 넣을 정도로 극우파다. 동맹은 확고한 인종주의, 분리주의 정책을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대로라면 이탈리아의 새 정부는 파시스트 친화적 정부가 될 것 같다. 이탈리아는 주요7개국에 속해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사나 노동운동사에서 빠지지 않는 유구한 좌파 전통이 있는 나라이다. 그런 나라가 1920년대풍의 극우파 사회로 퇴행 중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국가 부채와 포퓰리즘의 상호작용이란 틀로 이 상황을 분석해 봤다. 이탈리아는 국가부채 비율이 매우 높다. 1990년대 이미 1..
중국은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까? 신고전파든 케인스주의든, 비관적 견해들이 많다. 애쓰모글루는 착취적 제도 하의 성장은 상한선이 분명하다는 주장을 개진한다. 부가 증가할 수록 창조적 도전에 나설 유인보다 지대 추구에 만족하는 유인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은 무역흑자를 위해 국내소비를 억제하는 독재정권의 성장전략은 현재 같은 불안한 국제정세에 적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민을 쥐어짜 얻은 무역흑자로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극도로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린이푸 같은 중국 내 개혁파는 중국이 전형적인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간접적으로 경고한다. 공기업의 비효율, 정경유착, 지방정부의 그림자금융 등을 개혁하지 못하면, 즉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시진핑은..
인플레이션은 가격 전가가 가능한 독점기업에게 불리하지 않다. 명목 임금을 충분히 올려 실질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교섭력 있는 노동자도 손해를 보진 않는다. 하지만 납품가를 맘대로 조정할 수 없는 하청 중소기업이나, 명목 임금 인상이 쉽지 않은 불안정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는 손해가 막심하다. 금리 인상 같은 긴축 역시 손익이 갈린다. 은행은 당연히 이득이다. 서비스 변화가 없어도 중앙은행 결정만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긴축으로 투자가 감소하면 불안정 노동자부터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크게 감소한다. 대출 이자는 증가하는데 매출은 감소하는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다. 인플레와 긴축에서는 일반적으로 독점기업과 은행이 이득을 보고, 취약한 노동자/자영업자/하청중..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돼 문재명(문재인·이재명) 10년을 막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취임 100일도 되기 전에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았다. 여당은 이 와중에도 내분으로 무기력하다. 더군다나 민주당 지도부 선거에서는 대표에 이재명, 최고위원에 정청래, 고민정 의원 등이 유력하다. 이들이 누구인가? 민주당에서도 초강성으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으면, 180석 야당 민주당은 5년 후 대선을 기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원내대표가 국회연설에서 공공연히 탄핵을 거론하는 게 현재의 민주당 정서다. 참담하다. 포퓰리스트 정부가 이어지면 대한민국에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정권을 교체했다. 그런데, 반년도 되지 않아..
핵은 국체다. 김여정의 저 말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묘하다. 내가 알기로 일본의 역사적 맥락이 있는 단어인 국체는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정체와 다르다. 국체의 체는 실제 몸에 가깝고, 정체의 체는 체제, 즉 권력을 억제하는 제도에 가깝다. 정체(정부체제)가 군주정/귀족적/민주정 같은 정부 형태를 지칭한다면, 국체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 천황의 나라와 입헌제 근대 국가를 결합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다. 이토가 슈타인의 군주기관설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일본 제국 헌법은 '만세일계'의 천황에 대한 규정으로 시작한다. 천황은 헌법 위에 있지만, 입헌정에서 헌법은 최고여야 하므로, 천황을 헌법에서 규정한다는 딜레마를 천황이 곧 국가의 육체고, 헌법이 정신이라는 식으로, 다시 말해 육체가 정신을 실현한다는 식..
유럽 주요 도시들은 가뭄으로 단수가 이어지는데, 서울은 폭우로 도시가 잠겨버렸다. 현재의 도시 인프라로는 극단적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기술사, 경제사의 대가 로버트 고든은 현대를 만든 최고 발명 중 하나로 상하수도 시스템을 든다. 자본 집약적 발전의 필수 조건이 도시화인데, 그 도시화를 가능케 한 것이 상하수도의 발전이기 때문. 스마트폰보다 집집마다 있는 수세식 변기가 현대 문명에 더 중요했다는 지적. 고든처럼 이야기해 보자면, 22세기까지 현대 문명이 발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가뭄과 홍수, 폭염에 견딜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일 것 같다. 서울시가 겪어야 할 재난은 올해는 홍수였지만, 내년에는 가뭄일 수 있다. 어떤 시장이 재난 대처에 좀 더 잘하느냐 수준의 평가가..

새 정부 출범 3개월 후(後)가 아니라 차기 대선 3개월 전(前)을 보는 것 같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고, 사실상 당권을 장악한 야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는 마치 자신이 다음 대통령이라도 된 듯 목소리가 크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국정 난맥상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윤 정부는 태생적으로 여론에 취약하다. 박근혜 탄핵,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했다. 국민통합은커녕 국민분열이 상수인 시대다. 더군다나 정치인 경력이 1년 남짓한 윤 대통령은 다듬어지지 않은 언행으로 반복해서 점수를 잃었다. 둘째, 대선 이후 정부는 ‘이중권력’ 상태다. 대통령제에서는 국민이 행정부 수반과 국회의원을 따로 선출하다보니, 여소야대가 되면 “누가 국민의 대표인가”를 두고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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