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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있을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의 승리가 확정적이라고 한다. 선거연합은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형제당(Fdl)과 지지율 3위의 동맹(Lega)이 중심이다. 형제당은 네오-파시스트 운동이 사용하던 상징을 당 로고에 새겨 넣을 정도로 극우파다. 동맹은 확고한 인종주의, 분리주의 정책을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대로라면 이탈리아의 새 정부는 파시스트 친화적 정부가 될 것 같다.

 

이탈리아는 주요7개국에 속해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사나 노동운동사에서 빠지지 않는 유구한 좌파 전통이 있는 나라이다. 그런 나라가 1920년대풍의 극우파 사회로 퇴행 중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국가 부채와 포퓰리즘의 상호작용이란 틀로 이 상황을 분석해 봤다.

 

이탈리아는 국가부채 비율이 매우 높다. 1990년대 이미 100%를 넘었고, 2022년 현재 150%대에 이른다. 이 부채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기존 부채에 눌려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 때마다 지출 구조조정, 정부 개혁을 조건으로 하는 유럽은행 지원에 매달려야 했다. 국민이 아우성을 쳐도 정부가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니, 국민적 불만이 커졌다. 그리고 급기야 몇 년 전부터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폭발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국가 부채가 치솟은 시기는 1980년대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금리를 미친 듯이 올리자 이탈리아의 시장 금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때 치명적 문제가 발생했다. 물가와 연동하여 전국적으로 임금을 인상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노동시장이 국민경제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끈 탓이다. 1, 2차 오일쇼크로 경제가 침체했는데, 물가와 임금이 서로를 상승시키는 인플레이션 회오리가 몰아쳤고, 실업자 폭증으로 복지 지출이 급증해 재정 적자가 커지는데, 시중 금리가 치솟아 국채 이자 비용도 급등했다. 이자를 갚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도래했다.

 

더 심각한 위기는 정치가 이 와중에 자폭해버린 것이었다. 1983년에는 이탈리아 최초로 좌파(사회당) 주도 연립내각이 출범했다. 하지만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했다. 총리였던 크락시는 후에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해외로 도주했고, 대중적 조직력이 강력했던 공산당은 내각에 참여하지 않은 채 물가연동제 유지 같은 대안 없는 투쟁을 반복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좌파는 부패와 무능으로 대중적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깨끗한 손으로 불리는 부패 정치인 수사로 40여 년 집권에 빛나는 기민당까지 박살 나 버렸다. 정치가 국가부채 해결은커녕 부채 이상으로 국민의 어깨를 짓누른 셈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베를루스코니가 등장했다. 그는 포퓰리즘 정책을 가지고 우파를 재건했다. 좌파는 기존 정당들을 재편한 민주당으로 20여 년간 베를루스코니와 번갈아 집권했지만, 이탈리아 정치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여론과 미디어에 매달리는 포퓰리즘으로 급속히 타락해버렸다. 국민투표가 남발됐고, 정책은 여론 향방에 따라 바뀌었으며, 내각은 2년도 지속하지 못하고 수시로 교체됐다.

 

포퓰리즘의 폐해는 이탈리아의 경제 성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 1인당 GDP10년 전 수준이다. 부채가 성장을 낮추고, 저성장이 부채를 늘렸다. 경제 수준이 한국에도 뒤처진다. 1980년대 비슷한 국가 부채 급증을 겪었던 벨기에가 지속해서 부채를 줄인 사례나, 2008년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영국이 어느 정도 회복했던 사례와 대조적이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일관된 정책을 지속하지 못한 결과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는 국가 부채와 포퓰리즘의 악순환이 이어지다 마침내 파시스트 친화적 정부까지 등장하게 됐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수년 간 국가 부채와 포퓰리즘 정치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를 떠나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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