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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최저임금이 5.0% 인상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 과정은 예전과 비슷했다. 사용자 측은 동결, 노동계 측은 두 자릿수 인상, 두세 달간 평행선, 공익위원 안 제시, 표결 전 민주노총 퇴장, 사용자 측도 퇴장, 표결해서 공익위원 안으로 결정. 내가 아는 한 몇 번 빼고는 십수 년간 비슷한 패턴이었다. 수백만 명의 노동자와 자영업자에 영향을 주는 결정이 참으로 우습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년에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지자는 희망으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우선, 공익위원들이 명분으로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식은 문제가 있다. 올해 예상되는 <경제성장률 + 물가상승률 - 취업자 증가율>로 계산했다는데, 간단하게 말해 <취업자 1인당 명목 GDP 증가율>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노동생산성 지표다. OECDThe World Bank 같은 국제 경제기관에서 “GDP per person employed”라고 검색하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보통 생산성 상승률은 화폐 가치의 하락을 고려해 실질 GDP를 쓰지만,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명목 임금을 정하는 게 목표이니만큼 명목 GDP를 쓰는 게 타당하다. 공익위원들은 경제성장률 2.7%, 물가상승률 4.5%, 취업자 증가율 2.2%를 사용해 최저임금 인상률 5.0%를 결정했다.

 

나는 노동생산성 지표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률을 정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는 수치를 어떻게 산정했냐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은 아예 황당한 숫자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취업자 증가율은 다르다. 취업자 정의가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정부가 일자리 사업 좀 하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수치다. 문재인 정부가 이걸로 장난 좀 쳤다. 꼭 정부의 분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초단시간 일자리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그래서 통계청의 취업자 증가율을 그대로 사용해서 생산성을 측정하면, 생산성 상승률이 과소 측정될 수밖에 없다. 분자인 GDP는 별 상관이 없지만, 분모인 취업자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를 줄이기 위해 FTE(Full Time Equivalent), 즉 풀타임 취업자(35시간 또는 40시간)로 환산한 취업자 수가 사용된다. 예를 들면 주 10시간 일하는 취업자 3.5명을 풀타임 취업자 1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취업자 숫자가 확 달라진다. 예로 문재인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2017년과 비교해 54.8만 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는데, 한국경제연구원은 OECDFTE 환산 취업자 수를 이용해 실제로는 209만 명이 감소했다고 추정한 바 있다. 만약 한국경제연구원 수치가 맞는다면, 취업자 1인당 GDP, 즉 노동생산성은 엄청나게 상승해야 옳다.

 

보수 언론부터 주류 경제학자들은 문 정부가 취업자 통계를 분식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 측 인사들도 이들과 친화적이다. 공익위원의 성향을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어쨌든 정부와 교감하는 게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관성이 있으려면, 최저임금인상률 결정에서 사용되는 취업자 증가율은 과장된 취업자 수를 사용하면 안 됐다. 노동생산성에 맞춰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했으면, 취업자 증가율은 풀타임 취업자로 환산한 수치, 또는 그와 비슷한 수치를 사용했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취업자 수를 측정했다면, 취업자 증가율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수치보다 한참 낮을 것이다. 예로 2021년에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0.2% 감소했고, 36시간 미만 취업자 수는 12.6%나 증가했다. 장기 추이도 마찬가지였다. 2022년의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취업자 수는 플러서 2.2%가 아니라 마이너스 2%가 될 수도 있다. 최저임금인상률은 5%가 아니라 9%가 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엉망진창 상황은 정부만이 아니라 노동계에도 책임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사회적 부담감, 꼭 경제적 타당성을 가지지 않더라도 심리적 차원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많이 커진 계기가 다름 아닌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1만원캠페인을 문재인 정부가 수용한 후였기 때문이다. 2018~19년 노동계 주장처럼 화끈하게 최저임금이 인상된 후에 최저임금에 관한 국민적 신뢰도가 올라갔는가? 당장 문재인 정부부터 최저임금을 놓아 버렸다. 2017년 이후 최저임금 5년은 2년 반짝, 3년 암흑이었다. 제도의 남용으로 제도 자체가 훼손된 것이다.

 

노동계는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주관적 성격이 강한 '최저생계비'만 주구장창 외쳤다. 물론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은 상태라면 생계비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경제성장률 같은 지표가 의미가 없어서다. 민주노총이 건설된 1995년만 해도 최저시급은 1,300원 정도였다. 최저임금 영향에 있는 노동자 숫자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한마디로 액수가 낮아도 너무 낮았다. 이런 액수에 경제성장률을 곱한다 한들 의미가 없다. 그래서 어떤 절대적 최저선을 가리키는 생계비 기준이 민주노총에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18~19년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 숫자가 자그마치 3백만 명에 육박했다.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60%가 넘는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난 선진국 사이에서는 최상위권이다. 이 정도로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그다음은 다른 논리가 나와야 한다. 도덕적 근거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시장의 반작용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공공부문을 제외한 영역에서 유연성이 극단적으로 높다. 또한, 자영업 경제, 즉 아르바이트로 돌아가는 경제 규모가 고용 기준으로 보면 전체 경제의 1/3을 차지한다. 임금 변동에 따른 고용 조정이 빠르다는 의미다. 이제 노동계도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사용자 측 위원들은 이번에도 동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솔직히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사용자들은 이제 아예 제도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다. 국민경제를 함께 일궈나가는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논평도 아깝다.

 

2022년 최저임금 결정은 이렇게 끝났다. 노사정 모두가 무책임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나는 요즘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라는 경구가 자주 생각난다. 사회 전반에서 이런 미친 짓이 반복되는 것 같다. 최저임금제도는 크게 개혁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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