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함께 물가 폭등이라는 최고 난이도의 경제 문제에 봉착했다.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정부 말마따나 원인이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이 문제를 포퓰리즘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면서 해결해야 한다. 그는 전 정부의 포퓰리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 탄생한 ‘프로젝트’형 대통령이다. 검사 경력밖에 없는 그를 국민이 선출한 이유가 있다. 다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비이성적 열광을 부추겨 정부 실패를 은폐하는 정치 전략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정치인이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갖고 있다. 물가 폭등에 대처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의 유혹은 강해질 것이다. 윤 정부 50여 일의 모습을 보면, 솔직히 우려가 앞선다. 나는 윤 대통령이 포퓰리즘이라는 현대 정치의 블랙홀을 얕보..

윤석열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비판은 타당했다. 투기판에서나 볼 법한 ‘비이성적 열광’이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집어삼켰으니 말이다. 시장의 균형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이 투기 과열을 경고할 의무가 있듯이, 민주주의를 수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 역시 정치의 이상 징후를 경고할 책무가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비판은 현상만 지적했지 원인을 찾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자칫 지성적 엘리트와 우매한 대중의 대결로 곡해될 여지가 있어서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는 취임사 낭독 직후 “민중은 개‧돼지란 소리냐”, “너는 지성이고 우리는 반지성이냐”라는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다. 반지성주의 비판이 엘리트주의로 해석되면 반감만 커질 뿐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대통령이 언급은 했지만 차마 끝까지 밀..
십여명의 흑인이 사망한 뉴욕주 버팔로 총기 난사 사건 배후에는 '대체이론'이라는 음모론이 있었다. 민주당 엘리트들이 대규모 불법이민을 통해 백인을 몰아내려 한다는 음모론. 그런데 이 황당한 이야기가 소수 극우파 '또라이'에게만 영향이 있는 게 아니라, 공화당 주류와 폭스 뉴스를 통해 증폭되고 있다고 한다. 비백인 살상 사건이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미국 보수의 주류적 흐름 속에 있다는 건데, 정말로 충격적이다. ---------------------- 한편, 나는 미국 공화당의 타락이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당 타락이 미국 공화당을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1. 대체이론이 느닷없이 확산된 데는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민주당 ‘검수완박’에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것이 정의당의 사명이라면서. 나는 강 의원의 저 주장이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2중대론은 단지 상황적, 진영적 이유만 있는 게 아니다. 사상이 민주당에 잠식당했다는 게 이중대론의 핵심이다. 강 의원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져보자. 첫째, “촛불혁명의 주요과제인 검찰개혁“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당한 이유는 권력남용이었다. 대통령과 측근이 제왕적 권력을 이용해 행정기관, 사법기관을 초법적으로 지배한 것. 검찰 역시 대통령과의 거리 유지에 실패했다. 그런데 강 의원은 이 사실을 뒤집는다. 무소불위 검찰이 대통령을 지배했다! 저 검찰을 탄핵한 것이 촛불혁명이다! 촛불 과제 핵심..
888년 야마가타는 독일에서 배운 주권선과 이익선(line of interest)을 자신의 나라에 적용해, 한반도가 일본의 이익선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면 한반도를 일본이 지배해야 한다는 이야기. 놀라운 건 이런 이익선 개념이 20세기 내내 사회주의 진영의 철칙으로 이용됐다는 점. 1940년대 소련의 이익선은 베를린과 모스크바 사이에 있는 나라들이었다. 스탈린은 야마가타와 거의 비슷한 이유로 동유럽을 재빨리 점령했다. 1970년대 베트남 공산당은 통일 전쟁 승리 직후 곧바로 인도차이나 반도 주변국을 침략하는데,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였다. 소련과 중국이, 중국과 베트남이 영토 분쟁을 벌인 이유도 마찬가지. 사실 사회주의는 어떤 점에서 자유주의 진영보다 수준이 낮았다. 미국 주도의 진영이 ..
마르크스주의의 포퓰리즘 비판과 딜레마 1. 용어 Populism의 Pop~과 Democracy의 Demo~ 사이 구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pop은 선호 또는 감정을 가진 대중을 뜻하고(예. Pop music), demo는 양적 집단으로 대중(예. 인구통계학 demographics)을 의미한다. 참고로 폴리비오스는 주권자의 숫자를 기준으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을 나눴다. populism은 대중 감정을 우선하는 정치를, democracy는 인구 다수가 주권을 가진 정부를 지칭한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populism을 인민주의로 번역하는 건 약간의 오해 소지가 있다. 인민은 전통적으로 people을 지칭한다.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가 예다. 인민은 동맹을 맺은 피지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푸틴은 아직도 소련이 체제 경쟁에서 졌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나 보다. 우리나라에도 생각보다 푸틴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따져보면, 나토의 동진은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가 동유럽 나라들과 탈냉전 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게 핵심이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정치는 부패와 독재로, 경제는 정경유착과 독점으로 타락했다. 외교 관계도 마찬가지. 무엇을 위한 동맹이고 전략적 관계인지 알 수가 없다. 스트롱맨들의 독재를 위한 교류가 러시아의 대외 관계 전략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규칙 기반 질서'로 불리는 냉전 이후 국제 질서는 유엔, 세계무역기구 등을 통한 다자간 협약을 중심으로 구축됐다. 물론 그 규칙의 대부분은 미국이 주도한다. 심지어 미국..
사회주의는 지금도 유효할까? 10진수를 사용하는 인류는 십 단위 주년이 되면 뭔가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 2021년 12월 26일은 소련 해체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세기 사회주의는 변명의 여지 없이 자유와 풍요의 달성에서 자본주의에 패배했다. '진정한', '민주적', 어쩌구 저쩌구 같은 수식어를 붙인다고 사회주의가 살아나진 않는다. 사람도 그렇지만 이념도,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 구차해진다. 20세기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던 것일까? 핵심만 꼽아보면, 두 가지다. 첫째, 시장을 대체한 국유화-계획경제의 결함이다. 시장의 장점은 경쟁과 가격을 매개로 생산요소와 생산결과를 최적화한다는 점이다. 단점은 이윤율 하락 시 자본과 노동 모두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놀린다는 점이다. 국유화-계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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