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하게 들리겠지만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 안보와는 별 상관없는 머나먼 곳의 일이다." 중앙일보 남정호 씨의 이야기다. 그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이 대러 무역에 악영향을 끼치고, 종전 협상이 아니라 전쟁 장기화의 유인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단견이다. 작금의 세계는 세계화 이후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 있다. 바이든 식 민주/독재로 나뉜 신냉전 질서가 될 지, 복수의 경제안보네트워크 체제가 경쟁하는 질서가 될 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21세기 초 같은 단기수익/비교우위 중심의 자본 세계화 시대가 끝났다는 점은 분명하다. 포스트-세계화 질서를 어떻게 준비할 지를 두고 세계가 고민 중이다. 하지만 남 기자의 주장은 전형적인 세계화 논리다. 그는 일본이나 호주 같은 범..

남미 민주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잦은 탄핵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페루에서는 대통령 탄핵 여파로 내전에 가까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이 두 달간 충돌해 50여 명이 사망했다. 2016년 브라질에서도 대통령 탄핵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에콰도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등에서도 탄핵 사태는 잊을 만하면 터진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 이후 83번이나 탄핵소추가 있었는데, 야당이 한 해에 두세 번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던 셈이다. 탄핵 제도의 목적은 대통령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는 원칙적으로 행정수반의 임기가 무조건 보장된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막강한 권한을 생각해보면 위험하다. 의원내각제에서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행정수반을 ..
X세대는 리버럴해서 민주당 충성도가 높은 걸까?(신동아 2월호 기획기사) 77년생이자 20대를 선동가로 살았던 입장에서 보면, 답은 '그렇다'이다. 단, 그 리버럴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버럴(liberal)이란 말의 사회적 뉘앙스로 이야기해 볼 수 있겠다. 17세기 영국에서 리버럴은 '관용적'이란 의미였다. 영국적 리버럴은 다원성에 대한 인정과 그것을 조화시키는 이성적 힘을 강조했다. 리버럴이 계몽적 전통과 떨어질 수 없는 이유다. 혁명 단두대와 왕정복고, 제정 사이를 왔다갔다한 프랑스에서는 공화국이나 좌파(급진파)가 진보를 상징했다. 리버럴은 오히려 자유방임 시장을 지지하는 우파 이데올로기로 인식되는데, 평등과 사회적 통제를 강조한 사회주의 전통의 영향으로 볼 수..
1/ 이상민 장관은 해임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리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으로, 여당이 총선 패배로 감당할 일이다. 2/ 해임되어야 할 장관이 해임되지 않으면, 국회가 탄핵소추 할 수 있는거 아닌가. 대통령제에서 행정부와 국회는 주권을 표현하는 일종의 이중권력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단일 권력을 만드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서로 침해할 수 없는 권한을 정해두는 것이다. 탄핵소추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국회의 대통령 및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는 이중권력 사이 벽을 허무는 행위다. 헌법적 정당성이 명백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 탄핵소추의 오남용은 이중권력 간의 내전을 일으킬 수 있다. 3/ 이 장관은 탄핵 요건을 충족하지 않나. 판례에 의하면 탄핵은 중대한 법..

‘서울 낙원구 행복동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아가는 난쟁이 가족. 어느날 재개발로 집이 철거당한다. 증조부가 노비였던 아버지(난쟁이)는 달나라로 이주하는 상상을 하다가 공장 굴뚝 위에서 추락사하고, 공장 다니는 큰아들은 고용주에게 항의하다 해고된 후 우여곡절 끝에 살인자로 전락하며, 딸은 헐값에 팔려나간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을 목적으로 성적 학대를 견디며 건설 투기꾼과 동거한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의 줄거리다. 이란 약칭으로 유명한 이 소설이 조세희 작가의 별세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설은 1978년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300쇄를 찍었고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 반세기 가..
나는 요즘 사회적 갈등에 대해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서로 합의되지 않으니, 어느 편에 선들 공허하다. 힘 대결만 남는 것 같다. 지난 달의 경우를 보자.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두고 한 달 내내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월 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문화방송 보도가 국민의 공익(국익)을 해쳤다며 취재진을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다. 언론단체들은 이를 두고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또 월 말에는 경영계가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공익을 부르짖었다. 산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이었는데, 화물연대는 자신의 요구인 안전운임제가 ‘도로 안전’이라는 공익적 목표에 기여한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국익은 국민 이..
2017.11.21일 작성글 20년 전 겨울, 거대한 비극의 시작 20년 전 이맘때,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11월 22일 입국한 IMF협상단은 구제 금융의 대가로 빠른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었다. 한국 정부가 IMF에 속도 조절을 요청하자, 협상의 속전속결을 원한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한국을 압박했다. 구제금융 협상이 한참이던 11월 28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다음 주 중 한국 부도날 것이다. 유일하고 현실적인 길은 12월 1일 이전에 신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IMF와 합의하여 발표하는 것뿐이다.”라고 협박했었다. 한국 정부는 아시아통화기금(AMF)설립이나 일본의 금융원조 ..

한국경제의 기둥이라 할 제조업 공장에 가보면 중국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다. 웬만한 기업은 중국에 공장이 있다. 심지어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해도 중간 공정은 중국에서 하고, 마지막 공정만 한국에서 하는 제품이 많다. 최근에는 한국에 있는 중국 소유 기업도 많이 늘었다. 어디까지가 한국산이고 어디까지가 중국산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무역으로 30년간 큰 이득을 얻었다. 수출이 한국 경제성장의 절반을 책임지는데, 그 수출의 4분의 1이 중국으로 향한다. 중국의 세계화가 한국경제의 부스터였다. 이런 중국이 변하고 있다. 1인 독재체제를 굳힌 시진핑 때문이다. 그가 강조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정치경제학에서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부 소유 자본이 시장의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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