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정상회담의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내린 판결을 한국 정부가 알아서 수습하는 모양새니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다. 반일 감정은 뿌리가 깊고 넓다. 윤석열 대통령이 감당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괘씸한 건 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친일 정권의 본질을 보여준 최악의 굴종 외교”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판결을 먼 산 불구경하듯 4년간 버려둔 민주당이다. 온 국민이 비난해도 민주당만은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시도 때도 없는 ‘친일’ 타령은 근현대사에 관한 그들의 역사 인식이 만들어 낸 독특한 세계관에 기반한다. 나는 이 점을 크게 우려한다. 신냉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그들의 과거사 청산이 민족의 미래사를 위..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급락했다. 근로시간 개편안과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이 원인이다. 정권의 사활이 걸린 총선이 딱 1년 남았다. 비상사태다. 하지만 여론을 얻자고 전 정부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든 두 정책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나는 윤 대통령에게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인 자유민주주의를 되돌아볼 것을 권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정체(政體)다. 자유주의는 국민의 권리를 공식적인 법률(또는 제도)로 안착하는 법의 지배(법치)가 특징이다. 민주주의는 여론과 선거를 이용하는 국민에 의한 지배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자유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정체다. 물론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권리는 좁게 정해두고 법치만 강조하면..

70년대생의 민주당 지지는 유별나다. 진보 세대의 대명사인 60년대생(86세대)보다도, MZ세대로 불리는 80·90년대생보다도 완고하다. 이유가 뭘까? X세대로 불리는 70년대생의 정치적 선호는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이다지도 견고할까? 신동아 2월호의 기획 기사 가 뽑은 키워드-‘리버럴’을 가지고 이 질문에 답해보겠다. - 70년대생은 문민화 세대 특정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다른 시기 사람들과 구분되는 어떤 정치적 태도를 공유한다면, 특별한 경험을 함께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긴 시간을 또래와 보내는 10대 후반의 중·고등학교 시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학진학률이 높을 때는 20대 초반 역시 중요하다. 70년대생의 대학진학률은 40%~70%에 이른다. 분석은 대학 시기를 포함해야 한다. 이..
윤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자유민주주의를 절반만 이해한 것 같다. 최근 노동 정책에서 그런 모습이 특히 두드러진다. 자유주의는 위에서 보면 합리성에 근거한 현대적 통치 방법이다. 법치와 경제학적 근거가 합리성의 두 축이다. 자유주의는 아래에서 보면 권리장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보호하는 다양한 권리의 목록이다. 전자로 편향되면 엘리트주의가 고착되고, 심하면 독재로 나아간다. 싱가포르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후자로 편향되면 포퓰리즘이 나타나고, 극단적인 경우 만인이 권리를 앞세워 만인과 대립하는 내전이 나타난다. 남부 유럽이나 프랑스가 이런 경향이 있다. 둘 사이 균형이 자유주의적 발전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전자를 견제하고 후자를 강화한다. 수천 년간 이어진 군주제적..

성남시에서 30대를 보냈다. 인생의 기초를 세우던 때여서 그런가. 성남의 풍경은 지금도 자주 생각난다. 성남은 정말 풍경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도시였다. 북쪽에 있는 절반은 산업화 초기 서울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산 산동네고, 남쪽에 있는 절반은 천당 밑에 만든 도시라는 분당이어서 그런 듯하다. 북쪽 성남에는 반지하 집이 있는 연립주택과 옹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들이 가파른 산 위에 빽빽하게 모여 있다. 좁은 골목길에는 주민들이 신기에 가까운 실력으로 이중 삼중 승용차들을 주차해 놓았고, 주택과 차들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전력선·케이블티브이선·인터넷선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반면 남쪽 성남은 평평했다. 도로는 반듯했고 주차장은 넉넉했다. 전선들은 지하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북쪽에 있다가 남쪽으로..

(2019년 10월 작성) (긴 글이니 PDF로도 첨부.) 링크 1. 문제제기 적폐청산을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일본과의 과거사 역시 적폐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문 정부는 이전 정부가 체결한 위안부 협상을 사실상 파기했고, 징용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이전 정부들이 가지고 있었던 태도와 달리 일본 측에 배상을 받아내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문 정부의 이런 행보는 2018년 10월 징용노동자 손해배상에 관한 대법원 판결 이후 더욱 강화되어, 올해 내내 친일파 척결과 반일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7월부터 일본이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반일 캠페인은 범국민적 민족주의 열풍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정부의 현재와 같은 반일 캠페인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다. 첫째, 정부가 일본에게 얻어내고자 하는 바가..
사회주의(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다. 자본 수출, 부등가 교환(불평등 조약)을 통해 이윤율 하락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민경제조차 유지하기 어려워서다. 식민지 없는 민족경제의 고도성장은, 당시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 단계라고 불렀다. 여기서 최고는 붕괴론의 '최후'와 같은 의미다. 이런 제국주의에 대해 자본주의 안에서 살면서, 그리고 자본주의를 지양할 비전도 갖지 못한 사회주의자들이 반복해서 배상을 외치고, 소송을 걸고, 또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괴이하다.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겠다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적 타락의 극치인 몰락한 제국주의 국가에 배상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이상한가. 1960년대 중국이 일본에 배상을 요..
검사독재, 뭐,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문 정부는 86운동권 독재였을테고, 박근혜 정부는 유신독재 시즌2 쯤 될 터이다. 이명박 정부는 CEO독재라 부를 수 있겠고, 노 정부는 신자유주의(개혁) 독재, 김대중 정부는 호남독재, 김영삼 정부는 변종 문민독재라 할 수 있다.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불렀다. 이럴 수가. 한국은 아직도 민주화되지 않은 나라로, 5년 주기로 독재의 별칭을 바꾸는 나라일 뿐이다. 모든 정당과 정치인은 정권교체 여부와 관계 없이 잠재적 독재자다. 민주화란 정당과 정치인 모두를 일소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를 실제로 이룬 것이 또한 독재의 특징이라, 결국에는 이래도 저래도 우리는 독재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불쌍한 처지다. 정말 바똥멍 같은 소리다. 독재와 관련해 문민독재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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