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다. 자본 수출, 부등가 교환(불평등 조약)을 통해 이윤율 하락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민경제조차 유지하기 어려워서다. 식민지 없는 민족경제의 고도성장은, 당시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 단계라고 불렀다. 여기서 최고는 붕괴론의 '최후'와 같은 의미다.
이런 제국주의에 대해 자본주의 안에서 살면서, 그리고 자본주의를 지양할 비전도 갖지 못한 사회주의자들이 반복해서 배상을 외치고, 소송을 걸고, 또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괴이하다.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겠다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적 타락의 극치인 몰락한 제국주의 국가에 배상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이상한가. 1960년대 중국이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이유를 따르지 않는 것도 요상하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이런 판단을 한 것은 실리적 외교 이전에 사상적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칭하는 지식인들도 지적 기만이 심하다. 민족국가 수준이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자유주의 질서가 형성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다. 레닌이 주창하고 윌슨에 유행시킨 민족자결권이 실제로 구현된 건 국제연맹이 아니라 국제연합 이후다. 규칙 기반의 질서라 부르는 국제기구와 양자/다자 협약 중심 관계는 그보다 한참 후에 이뤄진다. 20세기 초까지 자유주의자들은 제국주의자이기도 했고, 심지어 인권의 나라, 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1950년대 넘어서까지 좌파 일부까지 식민지 유지에 찬성했었다.
이런 게 바로 20세기적 현대였고, 진보였고, 자유주의였다.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해방 80년이 다되 가는데 이 시점에도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대통령이 3.1절 연설에서 일본 규탄하지 않았다고 비아냥거리고, 더군다나 문재인 때의 망해버린 대일 외교를 다시 소환해서 복권하려고까지 하는 게, 참으로 기만적이다. 19세기적 제국주의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국제 질서를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최선을 다하든 말든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왜 인정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사회주의도 자유주의도 맥락이 없다. 특히 반일 앞에서 그러한데, 이번 윤 대통령의 3.1절 반응에서 보니 정말..ㅠ.ㅠ 민족주의 감성, 피해자 원한, 당연히 인정할 수 있고 위로해야 하고 함께 나눠야 한다. 하지만 알지 않나. 문재인 식으로 아무리 해봐야 전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