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의 이해관계로 총리를 만드는 일본의 ‘호텔선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한국은 근대화의 후발주자지만 민주주의는 더 잘하는 나라가 됐다." 오늘자 중앙일보 기명 칼럼의 한 부분이다. 정말? 나는 한국 사회가 일본에 대한 열등감 탓에 현실을 너무 왜곡하는 분야 중 하나가 정치분야라고 생각한다. 자민당 장기집권 하의 파벌 정치를 이야기하는데, 그런 식이면 지난 100년 중 십수 년 제외하고 한 당이 장기 집권한 스웨덴은 뭘까. 일본의 자민당 내부 좌우파 경쟁이 '호텔선거'라면, 인기 투표 식으로 대통령 후보 뽑는 미국 공화당은 '광장선거'인가? 결과적으로 봐도 트럼프를 내놓은 광장선거가 아베를 내놓은 호텔선거보다 낫던가? 일본의 다이쇼데모크라시는 프랑스 제3공화국보다 30여년 늦었을 뿐이고, 독일보다..
대선 때만 되면 좌우파 이야기가 나와서 정리해 두는 메모. 좌파/우파는 자유주의에 대한 급진파와 보수파를 지칭. 뭐라하든 현대(근대)는 자유주의가 만든 것이니 말입니다. 19세기적 의미로는 사회주의와 왕정복고파를, 20세기적 의미로는, 현대 자유주의라 할 케인스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비판과 공급중심측 비판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승만 시대의 난장판을 거쳐, 박정희 시대에 좌/우를 구분할 기준이 생겼다고 보는데요. 로스토우의 노선을 따르는 선의의 독재자에 의한 반공-발전(take-off)이 그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반대해 민주화-자유화를 원하면 좌파, 경제 이륙 후에도 독재를 영구화하려고 하면 우파. 그래서 한국적 좌파는 자유주의 느낌(느낌만!)이 나고, 한국적 우파는 왕정복..
지난 8월 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현지 정부는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수도 카불은 미군 관계자들이 비행기에 타기도 전에 탈레반에 점령됐다.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지 20년째 되는 날, 그 전쟁이 시작된 곳에서, 미국은 그야말로 굴욕을 당한 것이다. 도대체 20년 동안 미국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패하기 시작한 것일까? 사실 따져보면, 세계 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의 전략은 냉전 이후 지속해서 불안정했다. 냉전의 부정적 유산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데다, 금융 주도 세계화라는 새로운 전략은 태생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체제 우열 경쟁이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 자본주의를 재건했고, 동아시아에서 일본, 한국,..
종전선언이라..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헌정, 법치, 의회, 정당 등을 발전시킨 맥락 중 하나는 불평등 조약의 폐기였다. 영국이 주도하는 당대의 국제 표준과 호환 가능한 국내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서유럽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생각은 결과적으로도 옳았다. 문재인 정부도 생각 좀 해봐야 한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건, 단지 미국의 제재 탓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홀로 냉전을 계속하며, 전제군주정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표준도 깡그리 무시하는, 심지어 인권, 외교 등에서 현대적 상식까지 무시하는 김정은 일가의 속성은 오늘날의 세계 규범과 통하지 않는다. 중국과 베트남이 개혁개방이란 이름의 탈냉전으로 나아갔..

아프간이 성장을 멈춘건 1970년대부터다. 탈레반 같은 극단적 세력이 계속 출현하는 이유도 이런 정체 상태와 무관치 않다. 도대체 반백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실린 그래프들을 보면 대략 실상을 알 수는 있다. 1.(첫번째 사진) 1인당 GDP로 보면, 1970년대 아프간은 파키스탄과 비슷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반복해서 30년간 경제적 실패를 겪었다. 중요한 원인은 내전이었다, 70년대 말 공산주의를 내건 세속 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아프간의 봄(종교자유, 여성인권 등)이 잠깐 왔었다. 하지만 집권당 내부에서 파벌 투쟁이 심화하며 쿠데타가 발생했고, 소련이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 대군을 동원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과 파키스탄은 반공-무자헤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정조 이후 김대중·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 보수세력이 집권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200년 넘는 보수 편향 사회를 조정하려면 적어도 20년은 개혁을 대표하는 자신들이 집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 전 대표의 역사관은 18세기 조선 군주를 개혁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문제가 된다. 숙종·영조·정조로 이어지는 18세기 왕권 강화가 봉건사회 위기에 대처하는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의 왕권 복권 흐름은 19세기 말 고종의 시대착오적 절대군주제 집착으로 이어졌고, 결국 조선 사회 최후의 변화 기회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따져 보면, 18세기 조선에 필요했던 것은 왕권 강화와 붕당 숙청이 아니라, 신(..

50년 전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몸과 함께 법전을 불태웠다. 그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의 무력함을 그렇게 폭로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근로기준법 화형식은 당시 노동자들에게 노동 현장에도 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줬는데, 혹자는 이를 “근로기준법이란 보물지도”를 노동자들이 발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자에게 법은 항상 이중적이다. 노동운동은 한편에서는 법의 공정한 적용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법의 부당함 탓에 어려움에 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법 적용을 요구하는 대표적 사례는 부당노동행위 처벌이다. 법의 허용 범위를 벗어난 파업에 대해서는 쇠몽둥이 역할을 하는 법은 역으로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로 다룰 뿐이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

리쩌허우는 중국 사회주의가 문화대혁명이란 야만을 통과해 국가자본주의란 퇴보에 도달한 이유를 '계몽'보다 '구망'이 앞섰기 때문이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자유주의를 초극해 사회주의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한 이유는 생산력의 발전단계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지적 윤리적 능력을 함양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진단. 개인과 자유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자유인의 연합을 만들겠는가. 나는 이 문제의식이 깊게 동감하는 바가 있다. 아래 링크는 내가 몇 차례 칼럼으로 썼던 글들.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자유주의에 대해서 초극이 아니라 충분한 비판적 흡수가 필요하단 생각이다. 노동자, 민중, 계급, 사회주의, 투쟁, 연대 이런 단어들을 나열하는 게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권한다. 내가 뽑아 본 쟁점은 8가지이다. 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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