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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현지 정부는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수도 카불은 미군 관계자들이 비행기에 타기도 전에 탈레반에 점령됐다.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지 20년째 되는 날, 그 전쟁이 시작된 곳에서, 미국은 그야말로 굴욕을 당한 것이다. 도대체 20년 동안 미국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패하기 시작한 것일까?

사실 따져보면, 세계 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의 전략은 냉전 이후 지속해서 불안정했다. 냉전의 부정적 유산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데다, 금융 주도 세계화라는 새로운 전략은 태생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체제 우열 경쟁이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 자본주의를 재건했고, 동아시아에서 일본, 한국, 대만을 자본주의적 성장의 쇼케이스로 만들었다. 1970년대 경제위기도 그럭저럭 극복했다. 사회주의권은 1960년대까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자본주의 진영과 경쟁할 수 있었지만, 1970년대부터 심각한 문제가 여럿 터졌다. 소련은 경제 개혁에 실패했고, 프라하의 봄이 좌절된 후에는 동유럽에서 체제에 대한 불만이 급속도로 커졌으며,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혼란 이후 개혁개방을 통해 소련 사회주의권과 멀어졌다. 이후 소련은 1980년대에도 개혁에 반복해서 실패하다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엄청난 손해를 입었고, 레이건 정부와 군비경쟁을 하다 몰락했다. 냉전에서 미국 자본주의 체제가 이렇게 승리했다.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거대한 역사적 투쟁은 사라지고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사실상 영원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후쿠야마의 예언과 달리 탈냉전 시대는 냉전의 부정적 유산 탓에 그 시작부터 피바람의 연속이었다. 우선, 냉전 시기 미군의 지원을 받았던 세력들이 전쟁을 벌였다. 1980년대 미군이 지원했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1990년 걸프전쟁이 발발했다. 역시 미군 지원을 받으며 반소련 무장투쟁을 벌이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소련 몰락 이후 급속도로 세를 키워 1990년대 중반에 권력을 장악했다. 다음으로, 냉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전의 독재를 이어가려 새 시대의 국제규범을 무시한 사례도 여럿 나왔다. 유고슬라비아에선 공산당이 민족주의 정당으로 모습을 바꿔 민족과 종교로 나뉜 끔찍한 내전을 펼쳤다. 리비아와 북한에서는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독재자들이 1990년대 내내 반미를 앞세워 핵무기를 개발했다.

탈냉전 이행의 혼돈은 21세기에 들어서 무차별적 테러와 미국의 대테러 전쟁으로 더욱 심화했다. 걸프전 당시 사우디에서 세를 키운 알카에다는 20019/11테러를 저질렀고, 미국은 알카에다를 숨겨주고 있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2년 뒤에는 느닷없이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며 이라크도 침공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했던 힘은 동맹국의 경제적 성장과 미국적 질서의 규범적 우위 덕분이었는데, 테러와의 전쟁은 이 두 조건을 전혀 갖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각각 2천만 명이 넘는데, 이 정도로 큰 나라의 재건을 미국이 감당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미국은 전쟁 개시부터 끝까지 규범적 정당성도 확보하지도 못했는데,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세계질서에서 가장 중요했던 축은 금융 주도의 세계화였다. 1980년대 레이건은 탈규제 정책을 통해 금융, 상품,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크게 키워놨고, 1990년대 클린턴은 규제에서 해방된 자본이 세계를 상대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국제적 금융, 무역제도를 손봤다. 중국은 미국의 세계화에 올라타 크게 성장했고, 서유럽도 유럽연합을 만들어 금융세계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남미와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질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연쇄 국가부도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한국이 당시 규모 면에서나 강도 면에서나 가장 극적인 사례였다.

그런데 이런 금융 주도 세계화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하다. 금융이 힘을 쥔다는 것 자체가 실물 경제가 수익성 위기를 겪는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금융은 예금-대출이란 지루한 사업을 벗어나는 순간 투기가 되어버린다. 2008~09년 발생했던 금융위기가 단적이 증거다. 부동산 기반의 파생금융상품이 세계 경제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미국은 금융위기 이전의 재정, 통화 상태를 만드는 것에 실패하고 있다. 금융세계화의 피해가 제대로 복구되지 못한 채로 코로나19 위기까지 겪는 실정이다.

2010년대의 미국은 금융위기 피해를 복구하고, 중국의 급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세웠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오바마 정부의 새로운 세계 전략을 집약한 것이었다. 협정은 고도 성장하는 아시아의 자금을 미국으로 가져오면서, 동시에 중국은 효과적으로 포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 협정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무력화되었고, 미국은 무역전쟁이란 19세기적 방법으로 퇴보했다. 트럼프는 미국에 직접 투자를 하라고 협박했고, 중국과의 무역수지는 힘으로라도 조정하겠다며 관세를 높였다. 기존의 패권국이 신흥 패권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쟁을 벌인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셈이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시대로 복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 유산이 아프가니스탄 탈출로, 금융세계화의 유산이 엄청난 규모의 국가부채와 중앙은행 부실화로 남았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중국과의 긴장으로 여전히 답보 상태다. 중국 시진핑은 과거의 중화를 재건하겠다며 위험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중이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 이후 세계적 흐름과의 괴리가 더욱 커진 것 같다. 남북관계만 보는 외교, 정치적 목적의 반일 외교는, 탈냉전이나 아시아로의 회귀 시대는 고사하고, 냉전 이전 시대 또는 해방 전후시대의 외교를 보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킨다. 대선을 앞두고 세계정세 속의 한국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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