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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민 장관은 해임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리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으로, 여당이 총선 패배로 감당할 일이다.

2/ 해임되어야 할 장관이 해임되지 않으면, 국회가 탄핵소추 할 수 있는거 아닌가.
대통령제에서 행정부와 국회는 주권을 표현하는 일종의 이중권력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단일 권력을 만드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서로 침해할 수 없는 권한을 정해두는 것이다. 탄핵소추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국회의 대통령 및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는 이중권력 사이 벽을 허무는 행위다. 헌법적 정당성이 명백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 탄핵소추의 오남용은 이중권력 간의 내전을 일으킬 수 있다.

3/ 이 장관은 탄핵 요건을 충족하지 않나.
판례에 의하면 탄핵은 중대한 법 위반이 되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 혹자는 "시민이 안전하게 살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 만큼 이 장관을 헌재 심판대에 세우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다."(경향신문 사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라면 문재인 정부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우리 헌법이 정한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를 위반한 셈이다. 모든 정책 실패는 헌법에서 정한 기본권 침해가 된다. 모든 장관은 항상 탄핵되야 마땅하다. 정말 그런가?  

4/ 그럼에도 야당이 탄핵소추를 한 이유는?
민주당의 동기는 분명하다. 이재명 대표 방탄용이다. 국회를 전쟁터로 만들면 야당탄압 프레임을 씌우기 좋고, 체포동의안이 와도 부결시키기 수월하다. 한편, 정의당은 정략적 판단이 아니라 사상적 판단을 한 것 같다. 여론 재판을 국회에서 탄핵소추로 마무리하는 게 정의라고 본 것이다.

5/ 해외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나?
미국의 경우 장관에 대한 하원의 탄핵소추는 한 번 있었다. 1876년에 전쟁부 장관의 부패 건이었다. 대통령의 경우 존슨, 클린턴, 트럼프 세 차례 있었다. 2백여 년간 탄핵 대부분은 판사들을 상대로 이뤄졌다.
남미 나라들의 경우 탄핵은 합법적 쿠데타로 이용된다. Pérez-Liñán, Aníbal 은 <Presidential Impeachment and the New Political Instability in Latin America,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이란 책에서 군사 쿠데타보다 탄핵이 더 민주주의에 해악적이라고 평가한다. 쿠데타는 명백한 민주주의 파괴란 인식이 있지만, 탄핵은 민주주의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를 내적으로 파괴한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The Fates of Presidents in Post-Transition Latin America: From Democratic Breakdown to Impeachment to Presidential Breakdown"이란 논문(서평)을 참조해도 좋다)

6/한국의 경우
2016년 12월 이후에만 세 번째 탄핵소추다. 탄핵소추가 일상적 정치행위의 하나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만약 정의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다고 상상해보자. 어찌될 것 같나? 이상민 장관 사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장관들은 모조리 반년 내 탄핵당할 것이다. 여론 재판으로 유죄를 받을테고(2003년 말 노무현을 떠올려보라), 국회에서는 정의당이 소수당일테니. 합법적 쿠데타가 발발하는 상상이 되지 않는가. 

스티븐 레비츠키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정확하게 지적했듯, 21세기의 민주주의 몰락은 권력을 자제하지 못하는 행위들이 누적되어 결국에는 규범이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쿠데타로 무너지는 게 아니다. 바로 이번 탄핵 소추 건이 정확히 그런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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