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씨는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유력 대선 후보가 된 건 문재인 정부의 법치 파괴에 맞섰기 때문이다. 그가 민생을 챙길 수 있다거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노동시장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다고 기대해서가 아니다. 평생 검찰 일만 한 사람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러면 '법치'에 적합한 행정부가 뭔지를 정확하게 밝히고, 문재인 정부가 망친 걸 어떻게 복구하겠다는 건지부터 설득력 있게 밝혀야지, 되도 않는 정치인 흉내 내면서 거드름을 펴서 되겠는가. 차라리 그냥 "전 법무장관 형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하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제일이라고 평가받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정부가 뭘 해주겠다보다, "정부가 넘..
2021년도 어느덧 한 달 남짓 남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감염병 대유행 탓에 한 해가 정말로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올해를 돌아보며 내년 정세를 예상해 보겠다. 위드 코로나·경제복구·민주주의·국제질서를 키워드로 네 가지 질문을 만들어 봤다. 첫째, 위드 코로나는 연착륙할 수 있을까? 올해 초부터 백신접종이 이뤄지며 세계적으로 거리 두기가 완화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다. 겨울 들어 확진자와 중증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백신 추가접종이 이뤄지고, 먹는 치료제가 시판되면 상황은 나아질 것이다. 그래도 내년 초까지는 거리 두기가 풀렸다 강화됐다 하는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빠른 일상 회복을 위해서는 지친 시민들을 다독이며 방역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방역이란 공공의 이익을..
우리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자질에 관심을 가지는 건, 그들이 유권자의 의사를 '대리'하여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를 대표하여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가 직접 민주주의와 다른 이유고, 또한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슘페터는 민주주의를 '리더십'을 경쟁하는 시장에서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치열해야, 유권자가 능력 있는 대표자를 뽑는 데 유리하다. 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 이 리더십 시장에서 소비자가 적절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되나? 당연히 시장이 실패한다. 일반적 상품 시장에서 정보는 '가격'인데, 이 정치 시장에서의 정보는 언론과 함께 시민의 덕성이 중요..

민주당으로, 특히 이재명 캠프로 노동계 인사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기사(참조). 이들이 변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노동존중'이라는 문재인의 말을 참으로 좋아했다. 얼마나 반겼는지, 정부를 비판할 때도 "노동존중 약속을 지켜라", "노동존중 시대에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따졌다. 민주당 대선 캠프로 가는 전현직 민주노총 간부들은 이재명이나 이낙연이 노동을 더 존중해 줄 것이라 믿는 것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자기 스스로의 일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확실히 마르크스는 19세기 계몽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진리를 깨닫고, 규범을 진일보시키는 집단이 시대를 선도하며 무지한 민중을 일깨워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다만, 마르크스는 사적 이익에 사로잡혀 세계에..

정의당이 대선 완주를 할 수 있기를 정말로 오매불망 희망한다. 하지만 심상정 씨의 대선 출마문을 보니 암담하다. 충정으로 몇 마디 해본다. 1. 2017년 대선 출마 선언문인가? 2022년 아니고? 야당 후보에게 대선 핵심은 현 대통령 평가다. 그런데 느닷없이 심 후보는 이명박, 박근혜에 대한 비난부터 날린다. 둘은 나쁜 놈이다. 문재인은 이상한 놈 정도고. 황당하다. 2022년 대선이다. 2017년이 아니라!! 반보수 연합의 여지를 남기려다 보니, 이런 식이다. 솔직히 말해, 심 후보는 이재명 씨와 대권을 두고 경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2. "의회중심제, 다당제 기반의 책임 연정" 핵심을 비켜 나간 좋은 말 대잔치. 한국의 국회가 식물과 동물 사이에 있는 건 왜일까? 정의당이 다수당이 아니어서? 아..

"왜 민주당만 비판하느냐? 국힘도 함께 비판해야지!" 토론을 하다보면 항상 듣는 말. 가까운 동료들과 언쟁을 벌인 적도 많다. 전향했냐는 비난도 들어야했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우선, 180석 여당과 대선 후보도 못 내는 오합지졸 100석 야당 중에 한국 사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당연히, 그리고 오로지 여당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힘은 보수의 악세사리, 추억의 책가방 같은 존재일 뿐이다. 야당을 비판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없다. 다음으로, 이게 더 중요한데,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한국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사실 첫째 질문이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건 국힘이 민주당보다 못하다는 평가다. 그렇기 때문에 180여당 vs 100야당 구도 속에서도 야당을 비판하라고..

"아빠,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한테는 나쁜 사람이지만, 일본에는 좋은 사람아니야? 우리나라를 침략했지만, 일본에서는 로크처럼 정부를 만들었으니까?" 몇 달 전 아이가 한 질문이다. 아마도 아이가 어린이를 위한 존 로크 정부론을 집에서 읽은 후에, 식민지 시기를 다룬 반일 내용의 책을 학교에서 읽었던 것 같다. 나의 반응은 "응 맞는데. 집에서만 그런 이야기하고, 학교에서 친구들하고는 그런 이야기하면 안 돼."였다. 초딩들이 접하는 반일 정서가 꽤 강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몇 년 전부터 불었던 현 정부와 지지세력의 반일 열풍, 그리고 서점과 학교 도서관에 널린 설민석의 어쩌구 류의 반일 국뽕 책들도 의식됐다. 21세기의 한국에서 반공법은 이제 반일법인가 싶어 씁쓸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왜 우리..

화문 촛불집회의 질문은 “이게 나라냐? 적폐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게 나라다. 누가 적폐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질문이 달라지자, 대답도 성격이 변했다. 문재인을 ‘달님’이라 부르는 열성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을 적폐라 불렀다. 이렇게 적폐청산은 제도개혁이 아니라 싫은 사람을 뽑아내는 숙청으로 자리를 잡았고, 대통령의 심복 또는 추종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국가적 숙청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편, 대통령 지지자들은 ‘문빠’를 거쳐 마침내 ‘대깨문’이라는 투사로 변모했다. 이들에 의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도덕적 이중잣대는 정치적 탄압으로 윤색됐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찰총장은 제거해야 할 적폐로 각색됐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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