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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자질에 관심을 가지는 건, 그들이 유권자의 의사를 '대리'하여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를 대표하여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가 직접 민주주의와 다른 이유고, 또한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슘페터는 민주주의를 '리더십'을 경쟁하는 시장에서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치열해야, 유권자가 능력 있는 대표자를 뽑는 데 유리하다.

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 이 리더십 시장에서 소비자가 적절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되나? 당연히 시장이 실패한다. 일반적 상품 시장에서 정보는 '가격'인데, 이 정치 시장에서의 정보는 언론과 함께 시민의 덕성이 중요하다. 언론이 부패하고 시민 덕성이 타락하면 시장은 실패한다.

이 문제는 대중 민주주의가 가지는 일반적 문제로 지적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그렇다. JS밀은 <자유론>과 <대의 정부론>에서 유능한 대표자를 뽑고, 무능하거나 사회적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를 해임하는 게 민주주의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유권자의 지적 윤리적 능력에 따라 투표권을 차등 부여하는 복수투표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대표자를 판별하는 능력이 사람에 따라 같을 리 없으니, 그 능력에 가중치를 둬야 더 좋은 대표자를 뽑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 

참담한 건 한국에서는 JS밀 식의 복수투표제도 무망하다는 것. 조국을 지지하는 수천명의 교수들에게,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는 판검사 변호사에게, 정론을 포기한 언론인에게, 가중치를 줄 근거를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대중 역시  촛불시위, 조국 사태를 거치며 시민의 덕성도 합리성, 민주적 규범과 멀어지는 것 같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장동 비리에도 이재명 선호도는 40%에 육박한다니...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건지. 

참고로, 곤란한 건 이 국면에서는 마르크스보단 JS밀과 그의 후예들이 더 적합하다는 점. 19세기 중엽 영국 자유민주주의 최전성기에 마르크스는 동시대의 JS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혁명에 관심을 뒀다. 하지만 내 생각에 포퓰리즘 시대의 마르크스는 훨씬 더 JS밀과 친화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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