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비판은 타당했다. 투기판에서나 볼 법한 ‘비이성적 열광’이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집어삼켰으니 말이다. 시장의 균형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이 투기 과열을 경고할 의무가 있듯이, 민주주의를 수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 역시 정치의 이상 징후를 경고할 책무가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비판은 현상만 지적했지 원인을 찾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자칫 지성적 엘리트와 우매한 대중의 대결로 곡해될 여지가 있어서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는 취임사 낭독 직후 “민중은 개‧돼지란 소리냐”, “너는 지성이고 우리는 반지성이냐”라는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다. 반지성주의 비판이 엘리트주의로 해석되면 반감만 커질 뿐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대통령이 언급은 했지만 차마 끝까지 밀..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개헌을 꺼냈다. 요약하면, 1) 대통령: 4년 중임/결선투표, 2)국회의원: 연동형+권역별 비례대표제. 나는 송 대표의 개헌안은 세 가지 점에서 오답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반성이 없어서다. 2017~18년은1987년 이후 최고의 개헌 타이밍이었다. 그걸 다 날려먹고, 오로지 적폐청산과 공수처에 매진한 게 문재인과 민주당이다. 심지어 2019년 선거법개정과 위성정당이란 사기까지 치고. 선 반성 후 제안이 순서다. 둘째, 4년 중임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제왕적 권력을 개혁하다며 왜 임기를 늘리려는 걸까?중간 평가를 할 수 있어서? 한국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평가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남용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서 발생한다. 또한 국회가 권한이 적고, 정당이 대통령 부하로 활동하기..
문재인-이재명 정부.. 어쩌면 이탈리아 쇠락의 분기점이었던 1980~90년대를 한국에서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의 핵심 문제인 과도한 정부 부채는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니다. 1980~90년대 유산이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세계경제의 침체와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중앙은행은 미국을 따라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쓴 반면, 정부는 이전 관성 대로 경기 부양과 복지에 재정을 퍼부었다. 성장률 하락에 재정적자는 늘었고, 국채를 발행은 해야겠는데, 중앙은행은 사주지 않았으니, 해외에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자그마치 20%에 육박하는 초고금리로 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뭐, 말하자면 정부가 사채를 끌어다 쓴 격이었다. 결과는? 이자도 갚지 못할 형편이니 부채..
"아빠,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한테는 나쁜 사람이지만, 일본에는 좋은 사람아니야? 우리나라를 침략했지만, 일본에서는 로크처럼 정부를 만들었으니까?" 몇 달 전 아이가 한 질문이다. 아마도 아이가 어린이를 위한 존 로크 정부론을 집에서 읽은 후에, 식민지 시기를 다룬 반일 내용의 책을 학교에서 읽었던 것 같다. 나의 반응은 "응 맞는데. 집에서만 그런 이야기하고, 학교에서 친구들하고는 그런 이야기하면 안 돼."였다. 초딩들이 접하는 반일 정서가 꽤 강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몇 년 전부터 불었던 현 정부와 지지세력의 반일 열풍, 그리고 서점과 학교 도서관에 널린 설민석의 어쩌구 류의 반일 국뽕 책들도 의식됐다. 21세기의 한국에서 반공법은 이제 반일법인가 싶어 씁쓸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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