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제

인플레이션, 왜, 언제까지.

개용이 2022. 10. 12. 10:11

물가냐 경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각국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반년 넘게 논쟁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은 물가를 먼저 잡겠다고 일찌감치 결정했다. 약간의 경기침체를 대가로 물가상승을 조기 수습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연준은 올해에만 5회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물가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이유로 급등한다. 첫째, 갑자기 공급이 감소할 때다. 석유와 곡물이 대표적이다.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확하게 이 둘의 공급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의 빵 공장”으로 불리며, 러시아는 유럽연합 천연가스의 40%를 책임진다.

둘째, 수요가 갑자기 증가할 때다. 휴가철 물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올 초 물가상승은 코로나19 거리 두기 2년간 억압된 소비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방역이 완화되자 여행부터 외식까지 서비스 부분에서 소비가 급증했다. 코로나19 시기 자산가격이 폭등해 가계의 부가 늘어난 것도 소비 증가의 원인이었다. 소유한 주식의 가격이 두 배로 뛰면, 부자가 된 느낌으로 소비를 늘리게 된다.

셋째, 임금상승이다. 경제학의 주류 이론은 필립스커브로 불리는 물가와 실업률 관계로 물가상승을 설명한다. 앞의 두 가지가 일시적 공급·수요 불균형 탓에 발생하는 물가상승이라면, 실업률 하락, 임금상승, 생산비 증가, 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관계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물가상승이다. 임금은 한 번 오르면 액수 자체가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어서 물가가 아래로 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필립스커브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노조 약화로 인해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 교섭력이 크게 약화했고, 이에 따라 실업률 하락에도 좀처럼 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경향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어서다. 올해도 사정은 비슷했다. 실업률은 하락했지만 실질 임금이 상승하진 않았다.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임금상승을 올해 물가상승 요인으로 보긴 어렵다.

넷째, 기대 심리다. 앞의 세 가지 물가상승 요인이 사라져도 물가가 계속 상승할 때가 있다. 기대 심리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가가 앞으로도 오를 것이란 추측이 시장에 퍼지면, 사람들은 나중에 살 것도 지금 사 버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화폐의 실질가치가 계속 하락한다면, 저축 대신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노동자들도 물가상승을 고려해 임금 교섭에 나서는데, 기업은 비용 상승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 예상하고 상품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대심리가 실제 물가를 상승시킨다. 올해 물가상승은 초반에 기대심리가 영향을 미치다가 현재는 어느 정도 통제되고 있는 상태다. 미국 연준은 이 기대심리를 억압하는 일에 특히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당국이 사용하는 정책은 기준금리 인상이다. 금리가 인상되면 이자 부담이 커져 대출을 받아 소비나 투자를 하려던 계획이 많이 취소된다. 주식·채권·부동산 등의 자산가격도 하락한다. 상승한 예금 이자율보다 수익률이 낮은 자산부터 매각되고, 매물이 많아지면 자산가격 전반에 하방압력이 가해진다. 그런데 자산가격이 낮아지면 매매차익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만큼 가계소비도 감소하게 된다.

요컨대 금리인상은 소비와 투자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물가상승이 억제된다. 중앙은행에 의한 금리인상은 기대심리를 통제하는 데도 중요하다. 물가가 오를 때 당국이 적극적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시장은 물가상승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의심을 품을 수 있다. 공격적 금리인상은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금리인상을 통한 물가 억제는 상당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소비 감소, 실업 증가 등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급속도의 금리인상 뒤에는 경기침체가 항상 뒤따랐다. 경제학계에서는 올해 물가상승은 공급측 원인이 핵심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이 물가억제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통화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너무 많이 공급돼 있고, 물가 기대심리를 조기 진압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금리인상이 맞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30년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은행은 물가상승으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는 게 경기침체보다 낫다고 결정했다. 일본은 환율이 폭락하는 가운데서도 제로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은행·영국은행 등은 미국처럼 과감하게 금리를 인상하고 있지 못하다. 실물 경제가 좋지 않아서다. 이탈리아 같은 고부채 국가는 금리가 더 오르면 파산 직전까지 내몰릴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사정은 유럽연합과 비슷하다. 미국을 쫓아가긴 하는데, 미국처럼 과감하게 올리진 못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채를 가진 가계가 고금리를 견딜 수 없다. 가계의 이자부담 급증은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수출감소로 실물경제 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다.

미국의 금리인상 정책은 미국 내에서보다 밖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불안해진 그 나라 사람들이 물가 기대심리를 키우면서 자금을 미국으로 도피시키기 때문이다. 환율 불안정성이 원래 컸던 한국 원화는 달러당 1천500원을 향하고 있다. 극도로 시장이 불안정해 작은 사건 하나로도 난리 통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영국에서는 새 총리가 대규모 감세안을 내자 재정적자 우려가 커지면서 느닷없이 환율이 폭락했다. 일본은 달러당 140엔이 넘어가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일본은행이 달러를 풀어서 엔화를 사고 그 엔화로 다시 금리안정을 위해 국채를 사들이는, 그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이기도 한다.

글로벌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에 따른 대혼란은 올겨울 우크라이나 전쟁 향방에 따라 장기화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 만약 푸틴이 전술핵 사용을 실제로 고려하면, 물가와 환율은 발작 수준의 변동성을 보이게 될 것이다. 유로화를 시작으로 도미노 환율위기가 발발할 수 있고 ‘킹달러’를 넘어 ‘갓달러’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한국 경제도 견뎌 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겨울이 오고 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