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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두 선거에 관한 평가는 대부분 진보의 패배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하지만 이 패배로 사라진 것이 진보자체는 아닐 것이다.

 

사라진 것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한국사의 특정한 잔재다. 그것은20세기 말 민주화 운동의 결함이 극대화하여팬덤 정치라는 막장에 이른, 더불어민주당의 포퓰리즘 정치다. 이 잔재는 박근혜 탄핵과 촛불집회라는 상징으로 진보에 우호적인 시민들을 5년간 사로잡았다. 진보는 오히려 2022년의 두 선거, 특히 지방선거에서 보수에 참패함으로써 환상에서 해방될 기회를 맞았다.

 

앞으로 진보가 재건된다면, 민주당과 철저히 결별하지 않고서는 진보의 이상을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덕분일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의당 사례를 통해 이 점을 입증하려 한다. ‘보수에 맞서 민주당과 연합하는 전략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맞서 진보를 재구성하는 노력만이 정의당의 활로라는 게 이 글의 요지다.

 

2022년 지방선거 결과부터 살펴보자. 정의당 성적은 초라하다. 광역의원 2, 기초의원 7명이 전부다. 이전 선거와 비교하면 각각 80%, 70% 감소했다. 심지어 울산이나 창원 같은 전통적 노동자 도시에서도 단 한 명의 의원조차 배출하지 못했다.

 

그런데 긴 시야에서 보면 이 결과가 전혀 놀랍지 않다. 진보정당의 기초의원 숫자를 집계한 아래 그래프를 보자. 2010년만이 예외적으로 높은데, 민주당이 일부 선거구를 통째로 진보정당에 양보한 야권연대의 결과였다. 그해만 제외하면 아주 뚜렷한 우하향 추세가 나타난다. 2022년의 결과는 정확히 그 직선 위에 있다. 진보정당의 선거 결과가 꾸준히 부진했다는 의미다. 2018년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촛불집회의 여운이 남아있었음에도, 진보정당의 의석수는 이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이렇듯 선거 결과만 보자면, 진보정당은 민주당의 양보 없이는 단 한 번도 제힘으로 날아오른 적이 없다. 예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여당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통적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비례 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 표를 준 덕분이었다. 2012년 총선에서 13석을 얻은 것도 민주당(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 전략에 따라 선거구 일부를 양보해 가능했다. 반면 민주당이 제 살길 찾기 바빴던 2008년에는 민주노동당의 의석수가 5석으로 급감했다. 선거연대가 없었던 2016, 2020년에도 정의당 의석수는 6석에 그쳤다. 그러므로 2022년 지방선거 결과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단지 기존의 선거 동학을 따랐을 뿐이다.

 

진보정당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오랫동안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의석이 많아질수록, 양당 독점이 완화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점진적으로 실현되기도 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정당 비례투표제(12)가 실시됐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소수정당에 유리한 중선거구제와 기초단체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2020년 총선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실행됐다. 하지만 비례제의 확대가 진보정당의 성장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선거제도가 어떠했든, 진보정당의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건 민주당의 양보 여부였을 뿐이다.

 

정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오직 민생을 위해 양당 말고 다당제로 정치교체!”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앞에서도 확인했듯 정의당이 비상하지 못한 이유는 양당제나 선거제도 탓이 아니다. 나는 민주당 2중대라는 경멸적 표현으로 표상되는, 진보정당의 본질적 결함이 바로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 민주당의 양보 속에서만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리하여 오히려 다당제를 무효화하는, 민주당에 대한 인적, 사상적 종속이 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 경험을 하나 이야기해보겠다. 2018년 가을 나는 정의당 간부를 상대로 전국 순회 교육을 했다. 주제는 한국 경제였다. 그런데 한 가지가 신경쓰였다. 공산주의를 이야기해도 상관없지만,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비판은 조심해 달라는 당의 교육담당자 요청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 지역에서 포퓰리즘 정책의 시작과 정점에 두 대통령이 있다고 말하자, 교육장 분위기가 싸늘해지기도 했다. 당의 뿌리 중 하나가 친노세력이란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소수 야당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좌파를 대변한다는 정당이, 정부 비판을 주저하고 심지어 내부 토론까지 주의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민주당 정부에 대한 정의당의 태도는 일차적으로 인적 종속에서 비롯되었다. 정의당 대표를 역임한 천호선 씨는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출신이다. 두 번의 재보궐 선거에서 반()보수를 명분으로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김종대 전 국회의원도 노무현 정부 출신이다. 2017년부터 2년간 사무총장을 역임한 신장식 씨는 친민주당 미디어에 출현해 민주당 강경파와 유사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상당수의 정의당 당원들이 친노친문의 본진인 민주당을, 가족까지는 아니어도 이웃사촌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의당이 ‘2중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사상적 종속이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법치, 경제, 외교 같은 정부의 핵심 기능에 관한 지향이 분명해야 한다. , 자신만의 정부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보정당들은 자신의 정부론을 민주당에 손쉽게 위탁한 채, 민생, 인권 정책 등 소위 틈새시장만 노렸다.

 

최근 사례를 보자. 정의당은 법치 관련 핫이슈인 검찰개혁에 관해 그저 민주당의 입장을 추종했다. 공수처법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으로 공조했고, 배진교, 강은미 두 의원은 위헌 소지까지 있는 검수완박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당의 싱크탱크인 정의정책연구소는 검찰개혁에 관해 단 하나의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았고, 언론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장혜영, 류호정 두 의원은 원내 대변인임에도 검찰개혁에 관해 제대로 분석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정의의 핵심이 법치인데, 정작 정의당에는 정확한 입장이 없다.

 

경제 분야에서도 정의당은 그저 매운맛 민주당이었다. 정의당은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대책, 재정적자 확대 등 주요 쟁점에서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가 아니라 더 강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외교도 마찬가지였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반일 정책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이렇듯 정의당은 정부의 핵심 기능과 의제에 관해 민주당만 따랐으니, 사실상 집권을 민주당에 위탁한 셈이었다. 유권자 눈에도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또 보수가 집권했으니 다시 야권연대의 깃발을 올려야 할까?

 

정의당의 숙제는 민주당의 무엇을 어떻게 비판할지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의 발언과 입법은 의심부터 해야 하고, 입만 열면 민주당을 비판해야 한다. 정의당이 그들과 공유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정부의 핵심 기능에 관한 정책도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당의 의석수는 위에서 본 직선 그래프의 끝, 0으로 수렴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사족 하나 덧붙인다. 20세기 초 영국 노동당은 200년 역사의 휘그당(자유당)을 약 20년 만에 대체했다. 노동당이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니, 자유당이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찢어져 버린 것이다. 만약 노동당이 보수당이 최악, 자유당이 차선이라며 허구한 날 반()보수당 연합을 결성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영국의 경험은 민주당 내분이 점점 커지는 현재, 정의당에도 시사점이 있다.

※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자 통계. ※ 진보정당이 전국적으로 지방선거에 대응한 건 2006년부터였다. 2006년은 민주노동당, 2010년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2014년은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2018년은 정의당, 민중당, 2022년은 정의당, 진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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