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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의 민주주의 규범 파괴 심각.
여소야대에선 정치 내전 필연.
4년 중임 대통령제도 같은 문제.
12·3 비상계엄 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섰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소추됐고, 계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군경 고위 간부도 연이어 구속됐다. 계엄의 위헌성과 위법성에 대해서는 법조계의 의견이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문제가 있다. 바로 정치 개혁 문제다. 사법 처리가 결과에 대한 응징이라면, 정치 개혁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처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심지어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 제도의 결함과 무관치 않다. 여당의 역할만 봐도 그렇다. 국민의힘은 계엄 선언에 관해 대통령에게 완전히 패싱당했다. 그러고도 상당수 의원이 탄핵 소추안 투표에서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런데 정당이 무엇이던가. ‘비전’과 ‘규율’을 갖추고 나라를 통치할 집단적 힘을 형성하는 조직이다. 현대 정치는 정당으로 조직된 집단 지성을 통해 지도자 개인의 기질적 특성이나 일탈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이번 계엄 사태에서 여당은 정당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야당은 어떤가. 따져보면, 헌법의 안정성을 먼저 흔든 건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지난 2년 반 동안 자그마치 18명의 공직자를 상대로 탄핵소추를 남발했다. 심지어 당 대표의 부패 수사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탄핵 소추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탄핵은 “형사 재판적 처분이 어려운 조건에서 헌법 침해로부터 헌법을 보호하는 수단”이다. 민주당은 헌법이 전제하는 이런 암묵적 규칙을 무시했다.
두 정당의 상태가 이렇다. 불행하게도 여야 위치를 서로 바꿔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일극 체제’란 평가를 받는 민주당이 여당이 되면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안 봐도 뻔하다. 명백한 헌정 파괴를 두고도 ‘의리’를 앞세우는 국민의힘이 헌법에 충실한 야당이 될 리도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상황을 보면, 여소야대 기간이 여대야소보다 길었다. 대통령과 야당이 갈등했지만, 그럼에도 헌법적 권한을 극단적 방법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그래서 정부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호 존중이란 대통령제의 규범이 사라졌다. 탄핵은 일상이 될 터이고, 비상계엄까지는 아니더라도 헌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권한 행사도 난무할 것이다. 대통령제는, 잘 작동하긴커녕, 유지 조차가 불가능해졌다. 과도한 예측이라고 타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탄핵은 사전에서 찾아보는 단어였고, 계엄 선포는 열흘 전만 해도 망상의 영역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봐야 한다.
그렇다면 여소야대 상황에서 내전을 방지할 방법은 없을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정당 혁신이다. 두 정당이, 합리적 야당으로, 책임을 다하는 여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은 현실 가능성이 매우 낮다. 정치가 결투가 되었는데, 결투에서는 옳은 말이 아니라 장전한 총을 먼저 뽑아야 살아남는다.
둘째, 여소야대 상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이다. 국회 다수당이 행정부 수반을 함께 책임지는 의원내각제로 정부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내각제는 정당 정부를 지향하며, 행정 수반 교체도 유연하다. 물론 총리가 자주 교체될 경우 정부 정책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약점은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재 같은 대통령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치의 최우선 과제는 여소야대 상황의 극단적 불안정을 해결하는 것이다.
일부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임기나 재선 유인이 아니다. 앞서 봤듯 여소야대를 견디지 못하는 결함이다. 더 긴 임기의 대통령을 만들어 해결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그대로 두고 총리를 국회에서 뽑는 이원집정제도 오답이다. 여야의 극단적 갈등이 심화된 상태에서 여당 대통령과 야당 총리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작금의 상황에서 정치 개혁은 이중정부 또는 여소야대 상황을 원천 봉쇄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좋은 정부를 만드는 고차원적 개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정부와 무정부 사이에서 최악을 막는 개혁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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