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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맡은 한지원입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하는데요.

첫째, 사람들이 정치를 욕하는 이유가 뭘까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내가, 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어떤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법적인 문제가 있을 때나, 또는 집단 사이에 갈등이 첨예할 때, 정치에 바라는 바가 특히 많아집니다. 현재 무당층이 30~50%에 이른다하고, 그 어느 때보다 양당에 대해 비판 여론이 큰 이유도 문제를 해결 못하는 무능 때문일 겁니다.

둘째, 그렇다면 국민들은 어떤 문제를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문제가 뭔지를 사회적으로 합의하지 못하다보니, 정치권이 책임 방기를 해도 면책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남 탓 공방만 할 수 있거든요.

성찰과 모색 같은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려면 바로 이 문제, 정확히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당을 한다, 솔루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문제를 이런 방향에서 해결해보자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려 한다, 이런 정당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럼 제가 생각하는 정치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과 대략의 해결방향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한국전쟁이나, 국가부도 같은 천재지변 급 시급한 문제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건 당장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후세대가 죽고 사는 문제가 지금 진행 중이죠. 비유하자면, 후세대가 30년 이상 코로나 팬데믹 같은 일을 지속해서 겪는다고 상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바로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신냉전과 그로 인한 안보위기, 장기 생산성 정체로 인한 저성장 민생위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위기가 그런 것들일 것입니다. 너무나 잘 아는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나브로 심화하는 위기다보니 다들 말로만 위기다, 그러고 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신당이 창당한다면, 이 문제가 정말로, 중요하고, 지금 해결에 나서지 못하면 우리 후세대가 수십년 팬데믹 겪듯 고생할 거다, 라는 컨센서스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당이 기성 양당과 차이가 있고, 또 정말로 권력욕이 아니라, 시대적 소명에 입각한 정치인들을 배출할 수 있는 조건도 이것입니다. 복합위기 해결정당이 곧 신당이 된다면, 신당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복합위기로도 불리는 현 위기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구조적입니다. 주기적이거나 일시적 현상이 아닙니다. 둘째, 장기적이다. 무슨 방법을 써도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통령 임기 내는커녕 한 세대에 걸쳐 노력해도 해결될까 말까 한 문제들입니다. 셋째, 이력적((履歷)입니다. 이력 효과는 특정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건이 해결되어도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합니다. 국가 간 갈등, 장기침체, 인구감소 등은 전형적으로 이력 효과가 큰 사건들입니다.

이런 문제해결에 나서는 정치는 그래서 이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중요하죠. 신냉전, 장기저성장, 인구가 위기다, 라는 건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저 위기의 특성에 맞는 체질을 갖추는 정치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약 신당이 나온다면, 구조적·장기적·이력적인 위기 특성에 딱 맞는 정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정부 재정으로 증상만 완화하는 미봉책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니까, “집권 100일 작전” 류의 단기적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사회적 대타협에 기반한 초정부적 장기 개혁을 추진할 수 있고, 위기 과정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에 피해가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민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할 겁니다. 여론을 선동하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해법을 존중하는 정치여야 구조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위만 앞세우는 권위적 태도가 아니라 소통과 조정에 능숙해야 사회적 대타협과 서민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과학적 해법과 사회적 대타협을 동시에 추구할 실력을 강조하고 싶은데요. 이런 정치가 현 양당체제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정부의 여당이자 현 국회의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회과학을 무시하는 포퓰리즘 정책의 대명사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현 여당인 국민의힘은 불통과 무책임의 대명사입니다. 3대 개혁을 보라. 국회에 막히고, 이해당사자들에 막혀 진전이 없습니다.

문제 해결형 책임 정치의 좀 더 구체적 내용은 이럴 겁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타협을 통한, 민주주의 가치동맹, 구조개혁과 복지강화, 내각제개헌이라고 생각합니다.

짧게 각각의 내용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냉전 시대의 기본 전략은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 중인 민주주의 가치 동맹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미경중, 즉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전략은 탈냉전 세계화 시대에나 가능했던 겁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죠. 계속 저 구호만 외치는 분들이 있느데, 세계가 변한 걸 부정하는 것입니다. 중국과 무역은 하향하다 균형을 찾는 연착륙 방식을 찾아야 할 겁니다. 동시에 일본과는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다루더라도, 이를 신냉전 안보 전략의 장애물로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탈냉전 때나 가능했던 한반도 시야에 갇힌 친북 반일 연중 외교는 한민족 모두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민주당 진영의 세계관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중국대사와 만나 한 일을 보면 딱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실리의 경제 이전에 가치의 안보, 심지어 경제마저도 경제안보라 부를 시대 입니다. 중국 시진핑 체제의 변화는 세계를 위협합니다. 대한민국이 서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합니다.

저성장 위기, 인구 위기를 완화하고 견뎌내는 대책은 구조개혁과 복지강화입니다.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복지강화로 장기간 이어지는 위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죠. 당연한 이야기라 볼 수도 있지만, 또 20여년 동안 제대로 되는 게 없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앞서 말한 두 가지, 과학적 정책과 사회적 대타협을 함께 추구하는 정치가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단적으로 보여주었죠.

저는 대략 7가지 정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뤄야 할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1) 세대 간 분배 정의를 위한 대타협입니다. 저성장 시대 가장 중요한 구조개혁은 세대 간 분배와 관련된 것입니다. 고도성장, 인구증가 시대에 만들어진 노후연금, 건강보험, 가파른 연공성 임금체계 등을 저성장, 인구감소 시대의 청년들이 책임지는 건, 경제학적 분배 정의든, 상식적 규범에서든, 부당합니다. 1% 내외의 저성장과 인구 감소를 전제로 연금, 건강보험, 임금체계, 정년 등등을 모두 재설계해야 합니다.

(2) 계층 간 재분배 대타협입니다. 구조개혁이 불신받는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 양극화와 관련 있습니다. 소득에 관한 행복감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가 아니라 “남들과 비슷하다”로 형성됩니다. 한국은 이런 점에서 성장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회죠. 구조개혁이 불행을 가져온다는 믿음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구조개혁에는 재분배 강화가 필수적입니다. 다만 시장 소득을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의 구조개혁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은 세금을 통해 소득 격차를 축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부자를 응징한다는 식의 증세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예로 상위계층이 부담을 가지는 상속세와 재산세를 낮추고, 상위계층의 소득세와 (양도세득세 같은) 재산이득세를 더 걷는 타협을 생각해 봄 직합니다. 사실 상속세와 재산세 부담은 더 이상 소수 재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구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상위 계층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3)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수도권과 지방의 대타협도 필요합니다. 최선책은 지방균형발전이겠지만, 초장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수도권에 괜찮은 주택의 공급을 늘리고, 비수도권에는 좀 더 많은 중앙정부 자원을 배분하는 타협이 현실적 차선책입니다. 수도권에 신도시와 재개발을 확대하면 인구가 수도권으로 더욱 집중할 가능성이 큰데, 이에 대한 완화책으로 중앙정부 예산의 더 많은 부분을 지역에 할당하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사업에 관한 권한도 확대할 수 있습니다.

(4) 유연성,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勞勞 대타협입니다. 이중노동시장에서 하층의 안전성을 높이자면 상층이 점유한 자원을 분배해야 하는데, 그만큼 상층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합니다. 아니면 상층의 임금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데 이건 쉽지 않죠. 상층에는 생산성을, 하층에는 안정성을 강화해야 하는데, 이는 지도자의 명령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정부도 이들을 압도할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노동자 간에 합의부터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전국적, 산업적 수준의 초기업적 노사교섭, 사회협약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생산성 향상 및 분배 관련 기준이 노동 내부에서 먼저 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5) 일·가정 양립 정책 확대와 젠더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 출산-육아 지원은 더욱 내실 있게 확대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이대남/이대녀로 상징되는 젊은 세대의 젠더 갈등을 완화할 구세대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이 둘을 싸움 붙이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7자 공약이 대표적이겠죠. 이와 별개로 점진적으로 다민족 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출산율은 단기간에 개선되지 않는데, 이미 한국은 출산율을 높여할 시점을 한참 지나쳤습니다. 이민의 점진적 확대, 이주자에 대한 차별 축소가 시급합니다.

(6) 재벌개혁입니다. 대기업들은 한국 경제의 골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배구조와 경영권세습 탓에 한국경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부는 국민경제에 부담이 없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이 부회장의 약속을 이뤄줘야 합니다.

(7) 공공영역의 혁신과 강화 역시 필요한데요. 이는 시대적 요청입니다.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는 시장과 시민사회가 주도합니다. 하지만, 위기 시대에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는 허구적 쟁점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 정부냐가 진짜 쟁점입니다. 필수 서비스는 확대 강화하고, 부패와 특권은 개혁되어야 합니다. 특히 공교육 수준 향상과 세계적 수준의 연구가 가능한 대학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겁니다.

이제, 이 모든 과제를 잘 해낼 수 있는 정부 형태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과제입니다. 구조개혁과 복지확대는 사회적 대타협 속에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관계자들을 협상에 참여시킬 타협과 네트워크형 리더십은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의 특성입니다. 물론 내각제가 되려면, 좀 더 정확히 말해 입법부가 주도하는 정부가 되려면, 입법부의 행위자인 정당이 제대로 되어야 할 겁니다. 방탄국회에 올인하고, 대통령 마음을 쫓아 우왕좌왕하는 정당 말고요.

우선은 국민이 국회를 대통령보다 더 믿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 곧바로 개헌에 나서기보단, 입법부의 능력과 주도성을 키우는 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무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 범위를 넓혀야 하고, 예산권도 국회가 가져야 합니다. 특히 국회 상임위원회가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추고 입법을 통한 정부 운영을 담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대통령 부하거나 대통령의 적이거나, 이런 국회에서는 입법부 정상화가 어렵습니다. 책임이 있어야, 주도성도 만들어집니다.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신당 비관론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보려 합니다.

우리나라의 현 양당체제 정치 문화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지난 30년간 형성된 것입니다. 양당이 무능해도 어지간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일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잃어버릴 30년’이 도래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무너져야 하는 것들이 무너질 시간입니다.

물론 양당 모두가 문제라고 양당이 모두 사라진다는 건 아닙니다. 보수는 지키는 것, 무능하든 말든 기득권이 있으면 버팁니다. 하지만 진보는 다릅니다. 나아가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민주당은 그래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대체된 지배적 정당은 모두 진보쪽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자유당이 노동당에 대체됐고,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이 앙마르슈로 대체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55년체제에서 무너진 것은 사회당이었죠. 신당은 민주당을 대체하는 최전선에 서야 합니다.

전대미문의 한국사회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민주주의 동맹, 구조개혁과 복지강화, 의원내각제로의 단계적 이행을, 과학적 방향 정립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이뤄내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국민 각자가 소득, 가정, 건강에서 행복을 찾도록 돕는 정부, 선배 국민이 복지 혜택을 누리며 노후를 보낼 수 있고, 노력할 자유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교육받을 권리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정부를 만들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부를 만들 정당이 나와야 합니다. 성찰과모색이 만드려는 신당이 그 길을 열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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