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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5월 출범과 동시에 두 가지 노동 쟁점에 직면할 것이다. 하나는 6월로 예정된 최저임금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윤석열 당선자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강조한 일자리 문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5년 전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야심 차게 시도한 개혁 정책의 상징이기도 하다. 16.4%에 이르는 최저임금 인상률과 일자리 상황판은 지금도 국민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내건 당선자에게는 두 쟁점이 혹독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비교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에도 40%에 육박한다. “이러려고 정권교체 했냐라는 말을 미리 준비해둔 사람들이 많다. 새 정부는 문 정부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인가?

 

문 정부의 실정은 대통령의 권력을 앞세워 제도를 오남용한 것에서 시작됐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은 교섭력이 약한 노동자의 임금이 경제성장률이나 노동생산성 상승 속도에 미치지 못할 때 이를 보완하려고 만든 제도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이 제도를 가지고 경제성장(소득주도성장)을 달성하려 했다. 한마디로 제도를 오용한 것이다.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일자리 정책 역시 유사했다. 청와대는 공공부문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밀어붙였고, 고용 총량도 확대했다. 하지만 정규직화는 공정성 논란 속에 노노 갈등으로 비화했고, 고용 확대는 통계 분식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질 나쁜 일자리만 창출했다. 21세기 들어 집권 초보다 집권 말에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은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유일하다.

 

이런 제도의 오남용은 제왕적이라 불리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과 관련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법부가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 대통령 권력을 자제하는 규범도 없다. 이렇다 보니 대통령의 의지가 제도를 압도한 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최저임금법은 대통령이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가 인상을 결정한다고 정해놨다. 하지만 위원회의 과학적 분석과 내부 결정 과정은 대통령의 의지 앞에서 항상 무력하다. 대통령의 광범위한 인사권도 제왕적 권력의 핵심이다. 대통령은 수천 명의 측근을 낙하산으로 임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기관의 사업적 목표와 무관하게 대통령의 뜻을 집행한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노동 개혁의 실타래를 꼬이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고용 및 임금 제도는 당사자들이 오랫동안 숙고해야 개혁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 개혁에 성공한 서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짧아도 십수 년, 길면 수십 년에 이르는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몇 년간의 논의조차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대통령과 노동계 모두 제왕적 권력에 익숙해서 그렇다. 노동계는 대통령 권력을 이용해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의제로 삼고, 대통령은 무리하게 임기 내 문제 해결을 약속한다. 이런 관행에서는 임금체계, 사회안전망, 고령화, 산업전환 같은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한 의제는 진지하게 논의되기 어렵다.

 

나는 새 대통령에게 다음 두 가지를 조언하고 싶다.

 

첫째, 제왕적 권력이 아니라 제도의 힘으로 노동 개혁에 나서라. 새 대통령은 최저임금에 관한 자기 뜻을 관철하려 하지 말고 최저임금위원회가 본연의 취지대로 작동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무리한 약속을 남발하지 말고 정부가 어떤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할지 법제화한 후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노동 개혁 첫 문턱을 제왕적 돌파력이 아니라 제도의 안정화로 넘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성과가 없어도 이해당사자들과 5년 내내 대화하라. 임금과 고용 관련 공약은 힘으로 밀어붙이면 될 일도 안 된다. 임기 내 해결할 생각을 접고 이해당사자들이 사회적 대화를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대통령의 최선이다. 대통령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귀족노조같은 딱지를 붙이면 판이 깨진다. 제왕적 권력을 이용해 엉킨 실타래를 두 동강 내서 풀어보겠다는 식의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노동 개혁에서는 지난함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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