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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서문

개용이 2021. 7. 23. 09:40

자본주의의 경제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경제가 유례없는 혼란을 겪고 있어서이다. 산업화 이후 가장 지지부진한 상태인 노동생산성, 인류 역사상 최대치로 상승한 정부 부채, 근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빈부격차, 1차 세계대전 전후를 방불케 하는 무역갈등, 주기는 짧아지고 강도는 높아지는 경제침체. 그야말로 현 경제는 시계 제로상황이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이후에는 자신만만했던 경제학자들조차 앞으로는 어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지경이다. “자본주의가 재도약할 수 있는지, 만약 아니라면 다음에는 어떤 세계가 도래하는 것인지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부터 세계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엘리트들까지,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불안한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자본(Das Kapital)에서 집대성된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최근 특성을 분석한 후 그 미래를 전망한다. 자본이 가지는 강점은 경제학이 불문에 부치는 전제들을 철저하게 비판했다는 점이다. 자본의 부제는 경제학 비판이다. 자본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끝까지 탐구했고, 그 미래를 진보의 방향에서만이 아니라 퇴보의 방향에서도 살폈다.

경제학은 사적 소유권과 상품 시장의 존재를 절대적 전제로 삼아 이론을 전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 위에서 만들어진 이론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인간의 가슴에 가장 격렬하고, 가장 편협하며, 가장 악의에 찬 감정, 즉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을 싸움터로 불러냄으로써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가로막는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2000년대 내내 여러 대안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대안이 나올 때마다 마치 그것을 비판이라도 하듯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었다. 2004년 미국 연방준비은행(FRB) 의장 벤 버냉키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를 주창하자 2008년 대침체(Great Repression)가 발발했고, 2010년대 세계적 경제학자들이 4차 산업혁명이란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자 2020년 코로나 경제위기라는 잿빛 미래가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21세기 경제학은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반복해서 실패하고 있다.

자본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까지도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적 이해가 추구되는 공간은 사적 소유권을 바탕으로 상품화폐가 유통되는 시장이다. 하지만 이 둘은 자연적 권리나 원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역사적이며 특수한 제도일 뿐이다. 이 둘의 내적 결함이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가로막고, 나아가 경제를 수습 불가능한 혼란 상태로 이끈다. 자본의 최종 결론은 자본주의 경제가 필연적으로 작동중지(breakdown)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작동중지 상태는 엔진이 멈춘 후 관성과 바람의 힘으로 활공하는 비행기와 비슷하다. 엔진이 멈춘 비행기는 당장 추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력으로 다시 상승할 수도 없다. 땅을 향해 급격히, 때로는 바람을 타고 잠깐 상승한 후 다시 하강한다. 작동중지 상태의 경제도 이와 비슷하다. 지지부진한 저성장과 반복되는 위기로 불안전성이 커지며, 어떠한 개혁으로도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최악의 경우 아르헨티나처럼 국부가 소실되는 붕괴 상태로 나아가고, 최선의 경우조차 일본처럼 제로 성장이 계속되는 잃어버린 시대로 진입한다. 자본이 예측하는 자본주의의 종착지는 아르헨티나와 일본 사이의 어떤 상태이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의 이런 결론을 종교적 종말론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경제학의 세계관은 항구적인 성장과 균형이 있는 정상 상태(steady-state)이다. 심지어 경제학은 장기간에 걸쳐 균형이 깨져있어도 그것을 붕괴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것을 포함해 우주 만물 중에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체계(system)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구적 작동 체계야말로 오히려 종교적 발상이다. 현실의 체계는 잘 작동하다가도, 내적 결함완벽한 원이 현실에 있을 수 없듯, 완전무결한 무엇은 개념적으로만 존재한다이 어느 순간 임계에 다다르면, 작동이 중지된다. 자본모순의 전개라는 변증법을 이용해 내적 결함이 어떻게 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경제학의 영구적 작동 체계는 지속적 성장론(steady-state)을 근거로 한다. 보수로 분류되는 신고전파든, 진보로 분류되는 케인스주의든, 경제학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지속적 성장론을 전제한다. 지속적 성장론은 생산자원자본, 토지, 노동의 배분이 잘 이뤄지면 경제는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보수파와 진보파 사이의 쟁점은 어떻게 해야 시장이 제대로 생산자원을 배분하느냐에 있다. 보수파는 정부 개입이 없어야, 진보파는 정부 개입이 있어야 시장이 제대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규제개혁론이 전자의 입장이고, 복지국가론이 후자의 입장이다. 그런데 보수파는 미국에서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규제철폐가 현재의 경제적 혼란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진보파는 시장이 아니라 케인스주의 정책이 규제된 이후에 1990년대부터 경제성장이 재개됐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경제학은 좌든, 우든 역사적 실패를 무시한 후에야 미래의 대안으로 행세할 수 있다.

이 책은 오늘날의 경제 상태가 지속적 성장론이 아니라 자본의 작동중지론을 통해 좀 더 잘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자본이 분석한 자본주의의 결함은 기술진보의 자본 편향성으로 인한 이윤율 하락 법칙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술진보의 자본 편향성은 기업들이 노동을 절약(노동생산성 향상)하기 위해 자본 투자를 동반하는 기술혁신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경쟁적 기술혁신이 결과적으로 전체 기업의 자본 투자 수익률(이윤율)을 낮춘다는 점이다. 기술진보의 곤란 속에서 자본 투자의 증가분이 노동생산성의 상승분보다 커지기 때문이다. 투자와 고용의 원천이 기업의 이윤에 있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이윤율 하락이 투자와 고용의 감소, 즉 남아도는 자본과 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자본과 인구의 과잉이 계속 확대되면 당연히 경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케인스주의 정책이 실패한 1970년대, 신고전파 정책이 실패한 2000년대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심인 미국의 이윤율이 하락했던 시기였다. 경제학은 이윤율이 상승하는 특수한 국면에서만 설명력을 가진다.

편향적 기술진보의 결함은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자본의 변혁을 통해 일시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자본 투자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진보와 그 기술을 충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출현하는 것이 산업혁명이다. , 산업혁명을 통해 이윤율은 다시 상승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는 혁명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런 기술진보와 제도혁신은 쉽지도 않고, 계속 이어질 수도 없다는 점이다. 혁명은 짧고, 평상은 길다. 혁명의 효과가 사라졌을 때 이윤율은 다시 하락한다. 최근 경제학이 경제적 대혼란에 직면해 ‘4차 산업혁명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경제학은 이윤율 하락 법칙을 인정하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산업혁명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자본의 변혁이 불가능할 때는 그 반대편에서 노동의 변혁이 시도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이런 변혁의 간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은 개인의 소유를 공산당의 소유로, 경쟁 시장을 공산당의 독점 시장(계획)으로 대체했을 뿐이었다. 내전을 거칠 정도로 변화의 속도는 엄청났지만, 변화의 방향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20세기 미국 자본주의 혁신보다도 퇴행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소련이나 중국은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자본주의 속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국가가 소유와 시장을 독점했을 뿐이니 말이다. 국가자본주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자유, 평등, 풍요 그 어떤 것에서도 미국 자본주의보다 진보적이지 않았다. 노동의 변혁은 시작부터 실패했다.

변혁이란 변화의 속도 이전에 방향을 지칭하는 것이다. 점진적 개혁을 통해서든 아니면 급격한 정치체제의 교체를 통해서든,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그 변화가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결함을 집요하게 분석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함을 제대로 알아야 변화의 방향도 정확히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자유, 평등, 풍요라는 현대(modern time)의 이상을 실현하는 경제 체계로 300년 가까이 발전해왔다. 소유할 자유가 인신의 구속을 없앴고, 시장 거래의 평등이 신분적 차별을 없앴으며, 소유와 시장을 통해 발전한 생산력이 풍요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진보하면서 동시에 퇴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풍요의 생산은 이윤율 하락이라는 결함으로 인해 계속될 수 없었고, 자유는 임금 노예로 살아야만 얻을 수 있는 조건부 권리가 되었으며, 평등은 인간 사이의 평등이 아니라 1원의 평등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 자본주의를 통한 자유, 평등, 풍요의 추구는 변곡점을 지나 퇴보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나는 자본주의가 만든 진보가 무엇이고, 또 자본주의가 어떤 점에서 어떻게 퇴보하고 있는지를 오늘날의 정세를 분석하며 평가할 것이다.

***

나는 이 책이 자본을 좀 더 쉽게 접하려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본이 어려운 이유는 그 내용의 복잡성 탓도 있지만 150여 년 전 세계가 오늘날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최근의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현대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이 150여 년의 세월을 이어보려 노력했다. 자본의 현재화가 이 책의 또 다른 목표이다. 다만, 현대 경제학과 워낙 다른 전제로 이론이 전개되다 보니 책의 시작이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말했던 것처럼,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이 책의 1부는 <상품과 화폐>이다. 자본 11~2, 그리고 자본 33편에 해당한다. 노동가치론으로 인공지능 로봇, 디지털 경제, 비트코인, 재정확장 등 기술혁신과 관련된 쟁점을 분석한다. 2부는 <이윤과 임금>이다. 자본 13~6편의 내용이다. 착취 법칙으로 직장 갑질, 공정임금, 임금분배율, 귀족노조 등의 노동 이슈들을 살펴본다. 3부는 <성장과 위기>이다. 자본 2전체와 자본 35~6편의 내용을 담았다. 자본순환론으로 부동산 가격, 규제개혁성장, 소득주도성장 등의 경제성장론 쟁점을 따져본다. 4부는 <역사법칙>이다. 자본 17편에 해당한다. 자본의 결론인 자본축적의 일반법칙으로 경제적 불평등,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최근 이슈인 코로나19 사태 등의 자본주의 장기 비전과 관련된 쟁점을 분석한다.

자본은 대안 사회의 원리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나도 이 책에서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대안을 본격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17장 에필로그에서 자본에 함축되어 있는 대안을 짧게 정리해 볼 것이다. 대안사회에 관한 제안은 조만간 이 책의 후속으로 써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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