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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여론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사람이다. 다만 둘 모두 여야의 비주류라 내년 3월 대선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둘의 출마선언문은 차분히 비교해볼 만하다. 시민들이 다음 대통령을 선택할 때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쟁점이 있어서다. 대척점에 있는 둘의 ‘정부론’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진보진영이 대선과 관련한 논의를 할 때도 이 쟁점을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사는 선언문에서 “용기와 결단”, “강력한 추진력”을 강조했다. 제왕적이라고 평가받는 대통령 권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없다. 대통령 권력을 목표 달성을 위해 충분하게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의 정책 역시 “강력한 경제부흥정책”, “기본소득” 같은 생산과 분배 전 과정에서 정부가 대단한 권한을 행사해야 가능한 것들이다. 심지어 그는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겠다며, 개인 감정까지 통제하는 정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론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은 조금만 선을 넘어도 사회에 엄청난 효과를 미친다. 한국 대통령의 미덕은 용감함이 아니라 절제력이다. 문민화 이후 문제가 된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너무나 용감하게 멋대로 정책을 결단한 사람들이었다. 초법적으로 용감했던 전직 두 대통령은 지금도 감옥에 있다. 하지만, 이 전 지사는 절제는커녕 욕망까지 통제하는 강력한 대통령을 상상한다.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그의 기질 역시 ‘절제’와 거리가 멀었다.

 

이 전 지사는 문재인과 그의 측근들이 보여준 권력 오남용에 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다. 문재인은 권력 농단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을 탄핵해 놓고도 도리어 제왕적 권력에 더 집착했다. 검찰개혁이란 명분으로 대통령 수중에 사법기관을 집중시켰고, 심지어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들도 제거했다. 전염병 덕에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여당은 청와대를 견제한 게 아니라,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 눈치를 보며 도리어 대통령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줬다. 이런 모습은 “민주주의의 자살”이라고 평가받는 히틀러 등장 전후의 독일과도 비슷한데, 이 전 지사는 이 모든 걸 자신이 차지하면 된다는 건지, 법치와 민주주의에 관해 아무런 견해를 밝히고 있지 않다.

 

한편, 윤 전 총장은 권력의 자제를 강조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부는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그의 정책인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 혁신을 위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 자율적인 분위기, 공정한 기회와 보상, 예측가능한 법치” 등도 정부에 관한 그의 관점을 잘 표현한다. 정책은 정부가 모든 걸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을 틔워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국은 추격 성장의 시기가 끝난 이후 여러 면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른바 ‘중진국 함정’이다. 이때 필요한 개혁이 바로 경쟁, 소유, 보상, 처벌 등에 관한 공정한 제도이다. 자원을 총동원해 선진국을 모방하며 성장하던 시기의 정부와 자신의 역량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시기의 정부가 같을 리 없다. 후자에 필요한 정부는 시민 각자가 개인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정부다. 산업부터 분배까지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총력전 정부는 고도화된 경제의 반작용에 부닥쳐 실패하거나, 정치 엘리트들의 지대 추구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과 하버드대학교가 공동 연구한 보고서도 한국에 가장 필요한 개혁으로 지대 추구 또는 엘리트끼리 지대를 공유하는 제도들의 개혁을 꼽았다. 오늘날 필요한 건 정치와 경제의 제도들을 공정하고 예측가능하도록 개혁하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이 점을 추상적으로나마 지적하고 있다.

 

정권의 사법 방해가 대선 출마의 계기가 되었던 만큼 윤 전 총장의 출마선언문은 상당 부분이 문재인과 민주당 비판에 할애되어 있다. 선언문의 총론이 ‘정권교체’이다. 현 집권 세력은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상식과 공정, 법치를 내팽개쳐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했으며,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 법치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포퓰리즘이 현 집권 세력의 근본적 속성이다. 나라의 근간을 지키려면 각론 차이를 접어두고,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윤 전 총장이 지적한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중요한 지점이다. 민주주의는 대중을 타락시켜 다수의 폭정이 시작될 때 몰락한다. 여기서 자유는 폭정의 견제자다. 다수결로도 어쩔 수 없는 제약조건이다. 그는 민주당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4년 넘게 자신들이 잠재적 적으로 규정한 집단들을 두들겨 팼다. 적폐 청산, 친일 청산, 정치검찰 청산, 투기꾼 청산 등등 분야도 넓었다. 열성 지지자들이 적폐로 찍힌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린치하는 걸 표현의 자유라며 옹호했고, 여당은 역사 분야의 국가보안법이라 불리는 ‘역사왜곡법’도 만들었다. 선거법을 야당의 동의 없이 개정한 후, 이마저도 자신이 위성정당 꼼수로 무력화한 건 군부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었다.

 

이 모두가 군사 폭력이 아니라 여론의 지지 또는 국회의 다수결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권 세력은 프레임을 만들어 대중의 관심과 감성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가는 데 전문화된 정치 집단이다. 이들에 의해 민주정이 ‘폭민(暴民)정’으로 빠르게 타락했다. 윤 전 총장은 이런 작태를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라고 비판하며,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는 근거로 삼았다.

 

정리해보자. 전지전능한 리바이어던 같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부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부작용만 클 것이다.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세상”을 만들자는 그의 제안은 프랑스혁명 시기 로베스피에르를 떠올리게 만든다. 로베스피에르는 강자의 이해를 개별적 이해로, 인민의 이해를 일반적 이해로 규정한 후에 개별적 이해를 배제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강자의 욕망을 정화하는 게 단두대였다. 그의 일반 의지는 이 지사의 대동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자유민주주의는 포퓰리즘 정치를 비판한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한국 사회에 어떤 정부가 필요한 지도 적절하게 지칭하고 있다. 물론 윤 전 총장은 추상적 철학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 권력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어떤 제도를 어떻게 개혁할지 밝힌 바가 없다. 정치인으로서 그가 얼마나 자질이 있는지도 검증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이 대통령에 적합한지는 당연히 출마선언문만 두고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함에도 그의 자유민주주의가 이재명의 리바이어던보다 한국 사회에서 차라리 낫다는 점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은 소속 단체 입장과 완전히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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