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새로운정당 준비위원회(일명 금태섭 신당)의 정책팀장을 맡았습니다. 이 일은 제가 20여 년간 해왔던 일과 맥락이 아주 다릅니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몇 자 적습니다.

제가 일종의 ‘전향’ 비슷한 걸 하게 된 계기는 문재인 정부 때 경험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좋다고 여긴 정책들이 실제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 그대로 참담했습니다. 문 정부가 어떤 점에서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문 정부를 통해, 저를 포함한 진보 진영의 경제와 법치 사상에 어떤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법치 원칙과 경제적 합리성은 현대(modern) 정부의 가장 중요한 두 기둥입니다. 비인격적(impersonal) 지배와 합리적 통치가 바로 우리가 현대라 부르는 세계의 원리입니다. 두 기둥이 무너지면 현대도 몰락합니다. 그런데 문 정부에서는 진보의 이름으로 反경제학적 정책(최저임금, 부동산정책)이 횡횡했습니다. 또 진보 세력이 힘을 합쳐 反법치 법안(중국 공안위원회와 비슷한 공수처 설치와 경찰 우위의 수사권 조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포스트-모던 미래는 예측해 봤지만 프리-모던한 미래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현대를 넘어설 생각만 했기에 현대가 어떤 의미인지 심각하게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 정부의 실정이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현대가 이룬 성취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현대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저는 카를 마르크스만큼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을 좋아합니다. 식민지 시기 공산주의자들의 분투만큼 인촌 김성수를 비롯한 리버럴 계몽주의자들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2021년 초까지는 진보 내부의 비판을 통해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씨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후, 진보 내부의 비판은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됐습니다. 최악의 포퓰리스트가 제1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음에도,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 같은 진보 조직 중 그 어느 곳도 이재명 반대나 낙선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수 정권의 복귀를 막아야 한다며 이재명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적 포퓰리즘과 한국적 진보가 같은 의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입니다. 더는 내적 비판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만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윤석열 후보를 간접적으로 지지한 셈이었죠. 여러 글에서 문재명 10년은 폭민정(mobcracy)의 등장이라 경고했습니다. 무능한 보수 정부의 출현이 경기순환의 하강국면 정도라면, 문재명 10년의 타락은 대공황급 위기라 주장했습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원리 원칙대로 실현하려는 좌파라면, 정치적 거리는 이재명보다 윤석열과 가까워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입장이 지금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대선을 경유하며 제 인상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해 온 모 조직과 결별했습니다. 민주노총 운동과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역할은, 말하자면,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정치연합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제3지대 신당을 만드는 일에 함께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이 정도로 무능하지 않았다면 굳이 신당을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윤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反포퓰리즘 정치연합을 만들면 되니까요. 일본처럼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의 압도적 우위 하에서 여러 좌·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이 경쟁하는 체제라면, 한국 사회가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윤 정부와 국민의힘을 1년 넘게 보고 있자니, 그런 기대가 사라집니다. 국민의힘은 ’윤심‘만 쫓는 무능 정당을 탈피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중도층 설득에 실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신당은 원칙적 자유주의 또는 좌우파를 가로지르는 중도연합 입장에서 민주당을 대체하는 정당입니다. 포퓰리스트와 대결하는 최전방에 있는 정당입니다. 정부의 무능과 불통을 과학적 내용으로 지적하는 정당입니다. 안보, 경제, 인구 위기 같은 민족사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회적 대타협을 만드는 정당입니다.

솔직히, 정당 활동은 처음입니다. 이 글만 봐도 정치문법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적 느낌이 팍팍 듭니다.^^; 어떻게든 신당이 잘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과거의 동지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쉽지 않다는 것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조언과 비판 부탁드립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