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더 멀어진 글로벌 기후위기 대책, 더 시급해진 기후변화 적응 대책

개용이 2022. 11. 10. 18:20

유엔 기후총회가 지난 6일 이집트에서 개막했다. 작년과 달리 총회 분위기는 우울하다. 악재가 산적한 탓에 어느 나라도 자신 있게 기후위기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작년 총회 때 합의했던 ‘2030년 기후 목표(NDC) 상향을 이행한 나라도 193국 가운데 26국에 불과하다.

 

올해 총회의 핵심 의제는 손실과 피해.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지금까지 배출한 온실가스 탓에 큰 손실과 피해를 보고 있어서다. 예로 파키스탄의 경우 올해 7~8월 국토의 3분의 1이 잠겼다. 피해규모가 55조 원에 달한다. 아프리카의 여러 저소득 나라에서도 가뭄과 홍수가 이전보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들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선진국의 10%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는 선진국보다 크다.

 

사실 이 문제는 십수 년 전부터 제기되었던 것이다. 2020년부터 매년 1천억 달러씩 지원한다는 합의도 해놓았다. 그러나 실행 방법이 없다. 특히 누적 탄소배출량 순위에서 압도적 1위인 미국이 소극적이다. 21세기 들어서 세계 1위 탄소배출 국가로 올라선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두 나라가 주저하니 다른 선진국도 눈치만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 미중 갈등으로 올해 총해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파토분위기였다. 유럽의 중심인 독일과 영국은 당장 올 겨울을 나려면, 석탄이든 나무든 닥치는대로 태워야 할 판이다. 신냉전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을 감안하면 기후위기에 관한 지구적 협력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규제는 무임승차를 막아야 실효성이 있는데, 탄소만 배출하고 기후대책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 무임승차 나라가 너무 많다. 이를 규제할 국제기구도 없다.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도덕적 호소는 당장의 어려움 앞에서 힘을 잃는다.

 

인류의 지적, 윤리적 역량에 비추어 볼 때, 2030년 탄소배출 50% 감축, 2050년 탄소 제로 도달은 요원해 보인다. 올해 기후총회는 인류의 한계를 냉정하게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 같다. 기후재앙의 위험에 관해 윽박지르고 협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새로운 국제질서 없이는 기후위기 대책은 작동하지 못한다. 20세기에는 두 번의 세계전쟁을 치른 후 냉전과 유엔이라는 국제 질서를 만들어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무역/금융 규칙을 중심으로 세계화라는 질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세계화는 세계금융위기, 미중 무역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무너지고 있다. 그 다음 질서가 필요한 때이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 탄소배출 규제보다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에 초점을 두는 모양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친환경 에너지 법안에는 탄소세나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탄소 배출에 패널티를 주는 게 아니라, 저탄소 전기의 생산과 사용에 인센티브를 주는 구조다.

 

저탄소 에너지가 화석연료 에너지와 아직까지는 경쟁하기 어렵다는 게 근거다. 탄소세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친환경 에너지 생산비가 화석연료 생산비에 어느 정도는 근접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친환경 에너지의 발전량이 너무 적고, 생산비는 너무 높다. 탄소세 수준으로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바이든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시장에서 탈탄소 전략이 실행 가능해지려면, 정부 주도로 친환경 산업을 먼저 활성화해야한다는 것이다.

 

규제로 탄소배출을 막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이미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바다. 예로 메이저 석유 회사들이 탄소 배출 규제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을 팔고 있는데, 그 유전을 구매하는 기업들은 환경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들(비메이저 업체)이다. 최근 몇 년 간 석유 거래에서 탄소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유전에서 배출하는 탄소는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증가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탈탄소 계획은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다. 합의된 것도 없고, 일관되게 시행 중인 것도 없다. 더군다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방지책도 모호하다.

 

올해 여름 서울이 폭우로 잠겼다. 현재의 도시 인프라로는 극단적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경고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 집약적 발전의 필수 조건이 도시화였고, 그 도시화를 가능케 한 것이 상하수도와 같은 인프라의 발전이었다. 기후 위기가 가속하면, 거대 도시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뭄과 홍수, 폭염에 견딜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 서울시가 겪어야 할 재난은 올해는 홍수였지만, 내년에는 가뭄일 수 있다. 도시의 기후위기 대응 역량이 앞으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탈탄소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극단적 기후 변화는 수십 년간 피할 수 없다. 기후위기에 견디는 인프라를 만들지 못하면, 특히 인구와 자본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한국 같은 나라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국제적 협력이 이완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각자도생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위기 적응 대책이라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