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역사

정말 비토크라시가 문제일까? 제왕적 대통령제의 결함에 오히려 주목해야

개용이 2022. 10. 21. 10:49

박성민 씨는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가 상대 정파 정책을 모조리 거부하는 '비토크라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국회의 양당 과점을 해체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한다.(댓글 링크) 행정부의 절대자 대통령과 의회에서 각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다당/무소속이 존재하는 정치가 그가 말하는 대안이다. 대통령은 낚시를 하듯 정당들과 무소속을 건져올려 다수파 연합을 만들면 된다. 박성민 씨는 이게 현재와 같은 비토크라시보다 낫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당장 문재인 정부가 그렇지 않았다. 문 정부 최대 문제는 '비토'로 인한 무능이 아니었다. 청와대와 여당의 막무가내 선동과 사회 과학을 무시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문제였다. 비토로 멈춰선 기차가 아니라 폭주해서 레일을 벗어난 기관차가 문 정부의 이미지다. 

브라질을 위시한 남미에서는 박성민 씨가 말하는 대통령-국회 구조가 실제로 존재한다. 정당이 난립한 국회를 상대로 대통령은 관직이나 이권을 주고 연합을 구성한다. 엽관제가 연합정치의 매개로 사용되는데, 이 과정에서 온갖 부패비리가 벌어진다. 대통령의 연합정치는 부패의 제도화라 부를 수도 있다. "결정할 수 있도록 결정"하는 정치의 실체다.

그렇다면 정말로 문제는 무엇일까. 나는 근대 정치의 모든 문제는 입법부가 무능해질 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근대 정부의 제도적 안정성은 결국 입법의 역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정확하게 말하면 "행법"부라 해야 한다. 사회가 고도화될 수록 행정 역량이 유연하게 강화하는 건 맞지만, 그것도 기입법이 적합하게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선진국 도약이 '제도'적 선진화를 말한다면, 당연히 그 최전선을 이끄는 건 입법 역량이다.

사실 제왕적 대통령제란 말도, 대통령 권력의 절대적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입법부와 비교해 대통령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의미다. 서구와 달리 후발 추격 국가들이 대통령제를 선호한 이유도 유능한 입법가를 충분히 충원할만큼 엘리트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다. 영웅 한 명 앞세워서 정치를 이끄는 게 그 나라 엘리트의 최대치 역량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필요한 게 여전히 저 영웅적 대통령의 역량일까? 이 단계는 넘어가야 할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 필요한 건 '결정하는' 대통령의 역량이 아니라, 숙고해서 "차근차근 축적"하는 입법부의 역량이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징이 바로 국회를 식물과 동물 상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통해서 모든 것이 실현되어야 하니, 국회는 대통령의 부하(식물)거나, 적(동물)이 되는 두 가지 상태만 가능하다. 이런 상태가 현재와 같은 한국 국회를 만들었다. 

박성민 씨처럼 입법부를 대통령에 종속시키는 개혁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입법부 역량을 강화하면서 의원내각제로 갈 방법을 찾는 게 오늘날 정치개혁 과제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10/21/BLLI77ZPARAFRIBFCYNNXIARNA/